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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돈암동에 있는 지하철4호선 성신여대역에서 아리랑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영화 '아리랑'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아리랑고개'를 넘게 된다. 이 고개 사거리를 지나서 왼쪽 간선도로로 접어들면 소규모 시장이 펼쳐지는데 바로 정릉동 '아리랑시장'이다.
아리랑시장은 1960년대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고개로부터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해당했기 때문. 이후 주민들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이자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 인근에서 주택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시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배후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동선이 바뀌었고 쇼핑 양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도 200m 길이의 시장에는 100여개 점포가 모여 있지만, 전처럼 사람들을 붙잡기보단 흘려보내는 공간인 '통로'로 변했다는 진단이다.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계획건축물 부문 대상을 받은 '새로운 도시의 향수-아리랑 마을시장'은 이렇게 인근 도시 조직의 변화로 공간적으로 소외 당한 아리랑시장을 복원하고자 했다. 본래 시장의 기능을 회복하게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 형성을 촉진하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설계자 박정인씨(공주대 건축학과5)는 현재의 아리랑시장이 지역 밀착형 시장인 '아리랑 마을시장'로 변모하려면 일단 사람들이 시장에 모여들고 머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선 지역 주민과 마을공동체, 시장 상인들이 어울리면서 서로의 간극을 좁혀갈 수 있는 여러 공간이 필요하다고 파악했다.
실마리는 지역공동체에 있었다. 이곳에는 육아협동조합에서 시작해 시장 내에 카페까지 운영한 경력이 있는 지역공동체 '아리랑시장 주민행수'가 있었다. 설계자는 그들의 활동 장소와 활동 성과를 조사해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만한 장소를 탐색했다. 이후 시장 내외 동선의 결절점을 고려해 9개의 건축과 공간을 설정했다.
특히 시장 주변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을 긍정적으로 포섭하기로 했다. 개발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현재 재개발구역에 포함된 시장 구역이 개발 후 광장으로 사용되도록 계획했다. 특히 개발로 인해 새로 만들어지는 도로의 축으로 시장 구역이 확장되도록 설계해 시장길이 지역 전체로 뻗어 나가게 했다.
시장은 현재 공간의 성격에 근거해 A~D까지 4구간으로 나눴다. 각 구간별로 공간의 특성을 극대하기 위함이었다. 시장으로 접근하는 구간인 A와 B구간에는 광장과 상가지원시설, 마을기록관 등을 구성했다. 또한 임대카페나 정릉창작소를 배치해 그 자리에 머물며 시장을 바라보는 공간을 마련했다. C구간에는 다양한 벽돌건물을 넣어 익숙하면서 새로운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했고, 주거지와 시장의 경계인 D구간에는 이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고안했다.
풍경의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 재료와 형태도 세심히 선택했다. 새로이 단장하거나 짓는 건물에는 벽돌·콘크리트·타일 등 기존 건축물에 흔한 재료를 썼다. 특히 '정릉'이란 지역 특성을 살려 몇몇 건물에선 지금은 사라진 한옥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또 신축 건물을 기존 건물들과 비등한 크기로 설계해 자연스레 어울리게 했다.
박정인씨는 "시장은 경제 활동을 하거나 통로 역할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중심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시각적 변화와 다양한 이벤트가 있는 '아리랑 마을시장'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랬다"고 말했다.
"주민·상인 목소리 균형있게 반영, 완성도 높여" 설계자 박정인 공주대 건축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