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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완화' 카드 만지작

"인터넷은행 설립 땐 검토 필요"

완화땐 금산분리보다 파장 커 차명계좌 걸러낼 시스템 필수

대면 대신 화상·생체인식 통한 확인 방안 등 거론

뱅크월렛카카오 출범으로 '은행 없는 은행'이 점차 현실화되는 가운데 금융위원회가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위해 금산(금융·산업)분리와 더불어 금융실명제법 완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나마 내비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미 인터넷은행에 맞는 새로운 인가기준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인터넷은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일반은행 인가조건과 별도로 인터넷은행의 특수성을 감안한 인가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별도 지침을 마련했다.

특히 실명제법 완화 논의가 현실화할 경우 인터넷은행 출현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자산관리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은행의 채널·점포 효율화 방안' 토론회에서 이윤수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혁신적 금융 서비스를 위한 실명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금융실명제 완화를 현재 추진하고 있지는 않지만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원론적 필요성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당국이 직접적 발언을 꺼냈다는 점에서 실명제 완화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실명제법은 인터넷은행 설립의 최대 걸림돌이다. 현재는 직원이 직접 고객을 만나야만 비대면 채널을 통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은행(지점) 없는 은행 입장에서는 대면 확인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돼 인터넷은행 설립 유인이 줄어든다. 서병호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들이 국립호주은행(NAB)처럼 산하에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하려 해도 은행 직원이 일일이 고객 신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영업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의 경우 계좌개설 절차에서 본인 확인 절차만 있을 뿐 반드시 대면 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금산분리도 이미 완화된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터넷 은행과 관련한 별도의 인가기준도 없을 뿐 더러 실명제와 금산분리가 설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히 실명제는 되려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 금산분리 보다도 풀기 힘든 숙제로 지목된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대면 확인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실명제를 완화하지 않는 이상 인터넷 은행 설립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천대중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화상 및 생체인식 등을 통한 실명확인과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본인 확인, 타사에 위탁하는 방식 등을 허용한다면 인터넷 은행 비즈니스모델이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와 일본의 사례로 볼 때 인터넷 은행은 이미 금융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경우 지난 상반기 인터넷 전문은행의 순영업이익이 전체 은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가 넘으며, 일본도 인터넷 은행이 차지하는 규모가 연평균 30%씩 고속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통신사 및 유통업체 등 산업자본들이 인터넷 은행을 설립하고 있다는 것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세계 최초의 모바일 은행인 일본의 '지분 뱅크(Jibun Bank)'의 경우 미쯔비시도쿄UFJ 은행과 일본 이동통신사 KDDI가 손잡고 지분을 50%씩 공동 투자해 설립했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인터넷 은행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은 IT 강국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수준"며 "실명제법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은행에 산업자본을 허용할 것인지, 소유 제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면서 인터넷뱅크 설립을 위해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명제의 경우 금산분리 이상으로 사회 전반적인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도 지극히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현재 우리 실명제의 경우 형식적인 확인 절차 등은 깐깐한 편이지만 차명계좌 등을 걸러내는 시스템은 오히려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적으로 자금세탁방지 노력을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때문에 인터넷 은행 설립을 위해 실명제를 완화할 경우 차명계좌를 걸러낼 실질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대면 확인 없이 계좌개설 등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실제 본인확인 절차에 일주일 넘게 걸리는 곳도 있다"며 "우리나라도 실명제 완화의 부작용을 극복할 획기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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