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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행동주의 펀드, 아시아에 발톱 드러낸다

"아시아 기업들 성장성 높은데 지배구조 불투명해 주가 저평가"

수년간 치밀한 준비 거쳐 '작전'… 경영간섭 건수 매년 급증 추세

"투명한 회계·주주와 소통 강화 등 亞기업도 선제대응 적극 나서야"



월가 행동주의(activist) 펀드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한국·일본 등 아시아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 기업들의 성장성과 자산 가치가 높은데도 경영 불투명성 탓에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아시아 기업들의 외국인 의존도가 높아진 가운데 선진국 연기금 등 기관 투자가들도 장기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행동주의 투자가들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삼성 그룹 공격 등은 본격적인 아시아 공략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한 셈이다.

◇아시아 기업도 주주행동주의 사정권= 최근 행동주의 펀드 조사업체인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올 상반기 행동주의 펀드가 자사주 매입, 배당금 증가, 사업부 분사 등을 요구하며 기업 경영에 간섭한 건수는 3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나 늘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연간 500건으로, 2010년 106건에서 5년만에 5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그동안 '무풍지대'였던 아시아 지역도 사정권에 들었다. 올 상반기 아시아 지역에 대한 공격 건수는 10건으로, 미국 216건의 5%도 안 된다. 문제는 속도다. 2010년 단 한 건에서 2012년 6건, 2013년 10건, 지난해 14건으로 해마다 급증 추세이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에 굴복한 아시아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일본 산업 로봇 제조업체인 화낙이 롭 회장이 이끄는 서드포인트의 압력을 못 이기고 지난 4월 지난달 배당금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 사례다. 서드포인트는 2013년 소니 지분 7%를 인수한 뒤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분사 등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지분을 팔아 치우기도 했다.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의 경우 지난 3월 모바일 게임 시장 진출을 위해 유니버설 파크 앤 리조트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2년이나 지속된 홍콩계 헤지펀드 오아시스 매니지먼트의 등살을 버티지 못한 결과다.

오아시스는 일본 전자업체인 교세라, 캐논 등에 경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금융 컨설팅 업체인 핀스버리의 제임스 힐 아시아 대표는 "미국과 달리 아시아 지역 주주 행동주의는 초기 단계지만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통상 수년간의 치밀한 준비를 거쳐 작전을 개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행동주의자들의 공세는 봇물처럼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재벌 겨냥하는 행동주의 펀드= 특히 최근 엘리엇을 시작으로 아시아 재벌 기업 공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엘리엇은 올 3월 홍콩 3위 시중은행인 동아은행(BEA)이 신주를 발행해 우호 세력인 일본 미쓰이스미토모 금융그룹에 매각하자 "리궈보우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존 주주의 가치를 희석시켰다"며 법정분쟁을 벌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영이 불투명하고 지배구조가 애매한 아시아 가족 기업들은 새 투자처를 찾으려는 헤지펀드에게 매력적인 타깃"이라고 전했다. 엘리엇은 지난해에도 싱가포르 은행인 OCBC가 홍콩 윙항은행을 인수할 때 가격을 높이려다가 실패했다. 현재 한국 등 아시아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를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먹튀' 세력, 단물을 빼먹으려는 '기업 사냥꾼'으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에 관심이 많은 해외 연기금이나 국부펀드들도 행동주의 펀드에 대거 투자하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엘리엇은 지난해 헤지펀드 평균치 4%의 두 배에 달하는 8.24%의 수익률을 미 연기금 고객들에게 돌려줬다"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표 대결 때 캐나다 연기금(CPPIB)·캘리포니아 연금·플로리다 공무원 퇴직연금 등 주요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아시아 기업들도 행동주의 투자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대세로 인식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힐 대표는 "타깃이 된 대부분의 아시아 기업들은 준비 부족이라는 기본 실수를 저지른다"며 "투명한 회계, 재무·기업구조 개선, 장기 비전 제시, 투자가·언론과의 소통 등 선제 대책 외에 마법의 탄환은 없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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