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장관은 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외교ㆍ국방장관 연석회의인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를 개최한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정당한 협상에 나선다면 우리는 북한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지난 2일부터 2주간 일본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브루나이ㆍ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을 순방 중이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다시 북한과 대화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맺을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온라인매체인 글로벌포스트는 케리 장관의 이날 발언이 북측의 체제 안정에 대한 우려를 완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미국이 지금까지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태도를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케리 장관은 "북한은 법치 기준이나 국제적 행동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국가"라고 지적하면서도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미국은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북측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과거처럼 양보와 합의ㆍ파기를 거듭하면서 핵 프로그램이 지속되는 협상의 악순환에 빠지지는 않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북한은 미국의 이 같은 유화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핵무장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주변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4일 성명을 통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우리가 정한 목표를 따라 핵무력과 경제 건설의 병진노선을 굳게 틀어쥐고 변함없이 전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군대와 인민이 가진 핵은 미국의 핵전쟁 참화를 막기 위한 강력한 억제력"이라며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세계의 비핵화로 이어놓기 위한 평화애호적인 수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을 지난 7월 이후 석 달여 만에 실명 비난하는 등 날 선 모습도 보였다. 북한 국방위 대변인은 "박근혜와 그 일당은 민족의 지향과 시대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며 "함부로 내뱉는 악설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소나기를 자초한다"며 맹비난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국가원수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실명으로 비난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북측을 비난했다.
한편 미국이 지난 3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한반도 주변국이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정부는 일본의 방위와 관련한 논의가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하며 역내 평화와 안전을 기여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며 "한반도의 안보와 역내 평화와 안전에 대해 우리 측 입장을 일본 측에 적극 전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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