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을 뒤로 하고 다시 회생하는가 싶던 일본 경제가 ‘R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 마저 경기침체 신호가 잇따르고 있어 글로벌 경기의 동반 침체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자본지출) 증가율이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일 일본 재무성은 지난해 4ㆍ4분기 기업 설비투자가 전년 대비 7.7%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 규모는 3분기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일본경제 전문가들은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일본 경제는 이미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재무성은 또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들의 경상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감소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도쿄지점의 무라카미 나오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는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며 “기업 이익의 감소세가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는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를 말한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4.4분기 3.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올 1.4분기에는 2.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의 올 1ㆍ4분기 성장률은 오는 12일 발표된다. 일본경제의 위기를 나타내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매판매, 산업생산 등 각종 경기지표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둔화 및 달러 약세에 따른 엔화 가치의 강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상품가격 급등 등 일본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들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와타츠키 미키오 전 일본은행(BOJ) 이사는 “우리는 앞에 닥친 어려운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엔화 가치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본 엔화의 가치는 3년 이래 최고 수준인 달러 당 102.62엔 까지 치솟았다. BOJ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엔ㆍ달러 평균 환율을 달러 당 113엔으로 맞춰 놓은 상태다. 지금 같은 엔화의 강세가 지속될 경우 1달러 어치를 수출할 때마다 10엔 이상의 환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다. 통화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BOJ의 차기 수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도 일본 경제의 앞날에 낀 먹구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쿠이 도시히코 현 BOJ총재의 임기는 이 달 19일로 끝나지만 아직 후임 총재 선임과정이 난관을 겪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집권 자민당이 미는 무토 토시로 현 BOJ 부총재 대신 야마구치 유카타 전 BOJ 부총재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타 야스오 일본 총리는 당분간 BOJ총재 자리를 공석으로 두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밝혀 당분간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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