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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4개국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이 일로 국정이 흔들리거나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경제 살리기의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내각과 비서실은 철저히 업무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두 번째 방문국인 페루에서 이 총리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보고를 받은 뒤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총리의 사의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주기 바라고 지금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한 만큼 국회에서도 민생법안 처리에 협조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당초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오는 27일 이후 검찰수사 내용과 여론 동향을 살펴보며 이 총리에 대한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이 총리에 대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어 사실상 '사의 수용'으로 가닥을 잡았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임에도 불구하고 사의를 받아들인 것은 '이 총리 문제'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 여론이 분열되고 있는데다 이 총리 거취를 마냥 미룰 경우 국정동력마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가는 등 당청관계에서 국민들이 청와대보다는 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총리 거취'가 다른 중요 과제를 흡수해버리는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박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편, 공무원연금 개혁, 경제 살리기 등 핵심 국정현안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의를 수용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검찰수사가 우선이라는 원칙 대신 정치권의 목소리와 국민 여론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초 검찰수사 결과를 보고 이 총리의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정치권과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격적으로 사의를 사실상 받아들였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레임덕 현상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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