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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5월 15일] 스승은 인생대본 작가다
입력2010-05-14 17:22:05
수정
2010.05.14 17:22:05
스승의 날만이 아니라 힘이 들어 몸이 처지는 날이면 기억나는 소중한 분이 계신다. 고고학자이자 국립박물관 관장이셨던 고(故) 김원룡 교수님이다. 나는 김 교수님에게 강의를 들은 적도 없고 같은 대학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내가 그 분을 만난 것은 고작 30분에 불과하지만 그 분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아직도 계속해서 미치고 있다.
칭찬 한마디가 자신감 북돋워
지난 1985년 3월22일 오후4시, 미 버클리대에서 안식년을 보냈던 김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당시 나는 박사 후(Post Doctor) 과정을 밟고 있었고 대학 은사님이셨던 김 교수님을 뵈러 가는 내 처를 그냥 따라 나섰던 것이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와 소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고 일년 후 책 한 권이 한국에서 소포로 왔다. 김 교수님의 자서전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책에 나와의 만남을 기록하셨고 짧게 한 마디 적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조벽은 여러모로 감명 주는 호인물.' 이 문구를 읽는 순간 내 몸에 강한 전율이 흘렸고 온 세상이 갑자기 새로워졌다.
그 당시 나는 정신적으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로 부임하는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시절 이미 두자릿수 논문을 쓰고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는 같은 연구실 선배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자괴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연구실을 운영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감을 잃어가던 때였다. 자꾸만 움츠러들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 김 교수님의 그 말 한 마디가 나를 홀가분하게 해방시켜준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나의 부족한 면만 보고 살아왔다.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어린 나이에 외국 생활을 시작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라 말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지리도 모르고, 습관도 모르고, 그저 모르는 것 투성이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 눈에는 그저 부족한 내 모습만 보였을 것이다. 노래도 못 부르고, 뜀박질도 못하고, 얼굴도 못 생기고, 성격도 못나 보였다.
그러나 김 교수님의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와 닿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장점이 있음을 깨닫게 됐다. 김 교수님께서 무엇을 보고 그런 후한 평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말 한마디로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고,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끔 허락하셨고,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시켜주셨다. 아직도 내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김 교수님의 말 한마디를 떠올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말 한마디가 그토록 위력적이다.
'인생대본'이라는 게 있다. 실패했다고 풀썩 주저앉아 버리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인생대본이 있다. 누군가가 "너는 싹이 노랗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 말이 머릿속 깊이 박힌 사람은 다시 도전할 이유가 없다. 해봐야 어차피 실패할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제자들에 긍정적 변화 유도를
하지만 이와 반대로 "너는 잘 할거야"라는 말을 듣고 긍정적인 인생대본을 지닌 사람은 포기할 이유가 없다.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스승은 이러한 인생대본 작가다. 교사와 교수는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매 순간 학생들에게 인생대본을 써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은 부정적인 대본을 써주고 어떤 분은 긍정적인 대본을 써주고 있을 테다. 어떤 대본을 써줄 것인가는 각자 선생님의 선택이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 제자들의 인생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는 오늘날 선생님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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