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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소주 이야기
입력2006-09-04 16:49:38
수정
2006.09.04 16:49:38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바다이야기’를 수족관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횟집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퇴근길에는 그곳에서 맛갈진 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도박장으로 변했고 그 답답함과 역겨움을 안주로 소주 한 잔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소주는 한국인의 술이다. 만들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주정’이라는 알코올 덩어리를 깨끗하고 좋은 물에 희석시키면 된다. 물론 여러 가지 식품이 가미되지만 주원료는 물과 주정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술을 마신다’는 것과 ‘소주를 마신다’는 것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국내에서 비싼 양주를 즐기는 사람들도 외국에 나가면 꼭 국내 가격보다도 최고 10배나 비싼 소주를 찾는다. 이러한 일은 마치 일종의 애국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순한 소주 경쟁 촉발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소주시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 정치ㆍ경제 상황과 흡사하다. 고질병인 지역감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방 소주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자도주 원칙’이 지금도 확연히 남아 있다. 특히 영남ㆍ호남 지역에서는 더욱 뚜렷하다. 서울에서 진로의 참이슬이 많이 팔리듯 부산에서는 대선주조의 시원소주, 대구는 금복주의 참소주, 광주는 보해가 대부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 상황에 따라 이들 지역의 시장점유율이 달라졌다고 한다. YS가 대선에 당선됐을 때 보해의 광주ㆍ전남 지역 시장점유울은 거의 99%에 이르렀다고 한다. DJ의 낙선을 소주 한 잔에 담겨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DJ가 대통령이 됐을 때 판매가 크게 늘어 외환위기를 맞아 고생하던 대구의 금복주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러한 소주시장에 올 초부터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물론 진로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 시작했다. 지난 2월 두산은 ‘처음처럼’이라는 소주 신상품을 선보였다. ‘미(米)소주’ ‘산(山)소주’ 등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두산의 회심에 찬 공격이었다. 올곧은 선비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따온 이름부터가 신선했다. 또 하나는 도수를 20도로 확 내려 ‘순한 소주’ 경쟁을 촉발시켰다. 소주도 깡소주의 이미지를 탈피해 맛과 개성으로 삼는 신세대의 취향에 맞춰보기 위한 시도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도권 시장에서 판매 6개월 만에 15%대로 진입한 것. 철옹성이라고 불리었던 진로의 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진로 입장에서 ‘새발의 피’이라고 여겨지겠지만 진로의 대응은 그 이상이었다. 주문하는 언어가 바뀐 것에서 진로는 위기감을 감지했다. 그동안 수도권 지역에서는 ‘소주 한 병 주세요’ 하고 말하면 참이슬을 가져다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꼭 브랜드를 묻는 업소가 많아졌다.
소비자 기호에 따라 변화
진로는 과감한 반격을 했다. 선발업체라는 자존심을 과감히 버리고 20도 미만의 신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소비자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전략이다.
진로와 두산은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마케팅과 홍보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알칼리수’를 둘러싸고 서로 비방하는 광고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나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독한 소주가 순한 소주로 변신했다. 소주를 마시면서 ‘카~’ 하는 말도 이제는 사라질 수 있다. 소비자가 변한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변하면 그 기호에 맞춰 바꾼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은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는 듯하다. 임기라는 계약기간을 과신하기 때문일까. 오는 2030년의 장밋빛 희망은 갖고 있지만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당분간 나아질 기미를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전국백수연대 대표가 사회면 인터뷰를 장식할 정도다. 소주는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분명히 순하고 약하게 바뀌어졌다. 국민의 목소리대로 정부가 바뀌어질지는 아직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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