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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성장동력 여성인력 키워라] <5·끝> 높기만 한 현실의 벽

'그림의 떡' 육아휴직… 맘껏 쓰게하고 급여수준 올려야<br>직장 눈치에 사용률 12%·상한액 100만원 그쳐<br>男출산휴가 의무화하고 기간도 한달로 늘릴 필요

한 직장인 아빠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통해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육아휴직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서울경제DB


# 맞벌이 회사원인 강인구(34ㆍ가명)씨는 다음달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든다. 3년 전 첫아이를 낳은 뒤 육아휴직을 쓴 아내에게 다시 회사의 눈치를 감수하며 육아휴직을 신청하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강씨는 아내 대신 본인이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들을 돌보고 싶지만 차라리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을 것 같아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

# 서울시 도봉구에 살고 있는 7년차 주부 이경혜(37)씨는 여러 취업 사이트를 통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낮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알아봤다. 이씨는 국문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강사나 사무직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일자리는 모두 생산이나 서빙 같은 서비스직뿐이었고 대부분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데 신경 쓰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이씨는 구직활동을 중단했다.

우리나라는 여성의 일ㆍ가정 양립을 돕는 법적 뒷받침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등이 모두 법으로 보장돼 있다. 또 정부는 여성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이처럼 법이나 정책을 통해 여성 고용을 확대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앞서 강씨의 사례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라는 표정을 짓는다. 여러 제도들이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떡' 육아휴직=우리나라는 현재 여성과 남성 모두 1년씩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12%에 불과하고 평균 휴직기간도 7.9개월에 그치고 있다. 특히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의 비중은 지난해 2.8%에 불과했으며 남성은 출산휴가 일수 5일(여성은 90일)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육아휴직을 못 쓰는 이유와 관련해 직장문화와 분위기ㆍ눈치 때문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30.8%, 육아휴직 급여 수준이 낮아 경제활동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2.6%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뒤에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여건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남성의 출산휴가ㆍ육아휴직은 양육에 대한 남성의 공동 책임의식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여성 고용 확대와도 밀접하다고 분석했다.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남성의 출산휴가부터라도 우선 의무화하고 기간도 한달 정도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 선행돼야=우리나라의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40% 수준에 불과해 노르웨이(80~100%)나 스웨덴(80%), 독일(67%), 일본(50%) 등보다 현저히 낮고 상한액도 100만원으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가계경제를 고려해 육아휴직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장은 "출산ㆍ육아도 산재처럼 부득이하게 일을 하기 어려운 경우"라며 "평균 임금의 70%까지 보장하는 산재보험처럼 육아휴직 급여 액수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구조상 육아휴직ㆍ출산휴가 급여가 고용보험기금에서 제공되기 때문에 육아휴직 급여 인상은 기금의 재정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모성보호와 일ㆍ가정 양립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인 만큼 국가재정을 통해 급여 수준을 올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양보다 질=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앞으로 5년간 일자리 238만1,00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시간제 일자리 확대 목표는 93만개다. 오는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2021년에는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만큼 여성인력을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ㆍ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시간제 노동은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고용형태"라며 "남성 외벌이에서 1.5 맞벌이 모델(가구 단위로 남편 전일제, 아내 시간제)로 옮겨가면 가구당 가처분소득이 높아지면서 소비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잠재된 여성 인력을 활용해 다양한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주로 여성들이 일하는 전국 초등학교의 돌봄강사 4명 중 1명은 주당 근로계약 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 무기계약 대상도 아니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가입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학교 측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괄적으로 근로시간을 못박으면서 일자리의 질이 떨어진 것이다.

또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은 시간제 일자리 직종으로 서비스나 생산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강사나 사무직종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불일치를 해결하는 것도 과제다. 김은경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 주임은 "정부가 추진한 정규직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와 연계를 해보니 여성들은 사무직을 원하지만 기업은 사무직을 시간제로 만들기 어렵다는 입장이라 매칭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임신부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이 가능한 자녀 연령 범위 확대 등 여성 고용 관련 법안들도 근로자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도록 이행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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