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 대기업을 상대로 10년 가까이 일본 회사들이 가격·물량을 '짬짜미'할 수 있었던 데는 높은 기술장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담합 품목인 소형 베어링은 전자제품·건설기계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소재다. 0.00001㎜ 단위까지 계측·제조하는 정밀 기술이 필요해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 유럽기업들도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난 20102년 기준 국내시장 점유율은 미네베아가 56.3%, 일본정공(NSK)이 24.2%를 나눠 갖고 있다. 이를 이용해 양사가 짜고 가격을 올렸다 내리거나 물량을 서로 분배해도 국내 IT 기업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커피숍에서 시작…고무줄 가격 조정=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한동훈 부장검사)가 덜미를 잡은 일본 업체 사이의 가격 담합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0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네베아 본사의 베어링 총괄부장 M씨는 일본정공 전기정보부장 N 씨를 일본 도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상대 거래처에 같은 폭으로 값을 내린 VTR용 소형 베어링 가격을 먼저 제시하기로 입을 맞췄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거래처를 나눠 먹으면서 인하 폭을 최대한 줄이고 점유율은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양사는 베어링 가격을 0.33달러에서 0.315달러로 동시에 내려 피해를 최소화했다. 미네베아·일본정공간 짬짜미는 가격을 올릴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원재료 값·환율 급등 등을 내세워 최대 33%까지 가격을 올렸다. 가격 조정은 우선 일본 본사 고위직 합의를 거쳐 한국법인 직원들에게 지침이 전달됐다. 한국 법인에서는 이를 토대로 거래처와 접촉, 상품 가격을 인상했다.
이들 기업 간 짬짜미는 올 초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에 따라 미네베아·한국엔엠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드러났다. 미네베아 측은 공정위 조사에서 "본사끼리 합의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검찰이 미네베아 고위 임원을 일본에서 불러 조사하는 등 8개월에 걸쳐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자 결국 혐의를 인정했다.
◇큰 기술력 차이…재발 방지 '절실'=문제는 이 같은 국제적인 담합이 기술이나 시장 지배력 차이로 인해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 부문의 국내 한 변호사는 "그동안 국제 카르텔을 적발하고도 실제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핵심 부품은 제조하는 곳이 많지 않아 국내 기업들은 손실을 보더라도 보전을 요구하지 못하고 속병을 앓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검찰이 첫 사례로 일본 기업을 법정에 세운 만큼 앞으로 새로운 국제 카르텔 사건에도 손을 대 피해 보는 국내 기업들이 없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공정위 등 해당 기관과의 공조 관계를 한층 공고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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