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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한 케이블 방송에서 성공리에 방영됐습니다. 탤런트와 가수가 시골로 가서 직접 재배한 채소와 된장과 같은 재료로 밥을 지으며 건강한 식사를 친구들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방송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유명인들이 직접 요리를 하며 자신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있겠지만, 따뜻한 밥 한끼 먹는 것이 팍팍한 세상 속에서 위로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저 집에서 끓인 된장국과 김치, 그리고 잡곡밥 한 그릇에 행복해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항상 접하면서 또 갈구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축소판입니다.
방송처럼 매일 집에서 밥을 먹을 수는 없는 스케줄 탓에 기자는 식당을 자주 찾습니다. 그리고 식당에 갈 때마다 옛 생각을 나게 하는 음식을 만납니다. 바로 미역 줄기 볶음입니다. 중학교 시절, ‘미역 줄기’라는 별명을 가진 동급생이 있었습니다. 그가 다소 생소한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도시락 반찬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점심 도시락을 싸왔다는 이유만으로 음식 이름을 본 따 별명을 지어준 셈이니, 참 얄궂은 처우였습니다.
훗날 속사정을 알고 보니 ‘미역 줄기’라는 슬픈 별명을 가진 친구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15시간 넘게 일하는 모친이 직접 식사를 차려주거나 도시락을 싸 줄 여유가 없었기에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음식을 집에 저장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는 새벽녘에 모친이 출근하고 나면 등교하기 전 미역 줄기와 다소 건조한 밥, 그리고 다른 기초적인 반찬 등속만 챙겨서 자신의 도시락을 직접 싸야 했습니다. 급식을 안 하는 학교에서 부모가 싸 주는 최소한의 점심도 먹을 수 없는 그녀는 소외 계층이었습니다. 그에게 삼시 세끼를 건강하게 그리고 조금 더 당당하게 먹을 권리는, 좀처럼 보장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 전 한 방송을 통해 급식지원 카드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끼니를 때울 수 없는 아이들에게 소정의 식사비 지원을 통해 구제해 주겠다는 의도가 담긴 배려라고 지자체 당국자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카드로 제대로 된 밥을 먹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치솟는 물가에 비해 많게는 6,000원에서 적게는 3,000원 사이인 지원금은 따뜻한 밥보다 저렴한 빵이나 라면을 사 먹을 돈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학생들은 본인이 지니고 있는 그 카드를 지니고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이 눈총을 받는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 결제를 할 때마다 망설여진다는 가슴 아픈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끼니를 때우려 카드를 긁을 때마다 차별받는 계층이라는 생각까지 해야 하니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영양 불균형과 면역 결핍까지 우려되는 학생들의 모습은 삼시 세끼가 아니라 한 끼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에게 충분한 식사 지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그 옛날 기자의 친구가 겪어야 했던 미역 줄기 반찬의 아픔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인지 구조의 저변이 형성된다는 사춘기 시절, 이런 아픔을 안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후유증이 남습니다.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에 무상급식이나 선택적 급식 논쟁은 너무나도 거친 어른들의 담론이 아닐까요. 최근 들어 공공기관들이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적 마인드를 갖고 서비스를 구성, 기획하자는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답니다. 어떤 점에서는 소외 계층을 향한 정책이야 말로 매우 세심한 고민과 디자인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지금껏 아이들의 끼니를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지도자들은 봤어도 정책 집행의 전과 후를 명확하게 비교하며 몇 십 년의 밑그림을 그려가는 인물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도 미래의 유권자라는 점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기는 다름 아닌 방학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점심마다 나오는 급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방학이 그들에게는 불행이라고 하니 매우 역설적인 진실입니다. 이제 어린 학생들의 건강한 식사를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를 배려하고 미시적으로 잘 설계한, 의미 있는 ‘삼시 세끼’가 절실한 때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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