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내년 여름으로 예상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도미노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경기 둔화 위험이 크지만 외국인 자금 유출을 차단하고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흥국들이 방어막 치기를 서두르면서 미국 금리인상으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이 연준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조치를 시사했던 지난해 5월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일부에서 나온다.
◇내년 통화정책 완화에서 긴축 선회=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를린치 분석에 따르면 올해 주요 16개 신흥국 가운데 9개국은 금리를 내렸고 3개국은 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통화정책의 'U턴'이 예상됐다. BoA메를린치는 "18개 신흥국 가운데 12개국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며 "멕시코, 태국, 헝가리, 이스라엘이 시장보다 빨리 '깜짝' 인상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또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내년 통화 긴축에 나서고 다른 국가들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BoA 메를린치는 설명했다.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연준의 금리인상 때는 외국인 자금 엑소더스(대탈출)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통화가치 하락에 물가가 급등할 수 있는 만큼 선제 대응 계획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자금의 신흥국 투자도 감소 추세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8월 신흥국 유입 자금은 90억 달러로 5~7월 월 평균치인 380억달러보다 대폭 줄었다. 바클레이스PIC의 이안 스캇 자산전략 부문 수석은 "신흥국 기업들의 이익 감소, 연준 금리 인상 전망 등으로 인해 신흥국 시장에 역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흥국의 주요 정책 당국자들도 금리인상 신호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무하마드 차립 바스리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최근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줄면 인도네시아와 같은 신흥국은 자금유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며 "내년에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재정·통화 긴축을 통한 경제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도네시아 기준금리는 7.5%로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이지만 해외 투자가들을 끌어들이려면 더 올려야 할 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필리핀도 외국인 자금 유출로 페소화 가치가 5개월만에 최저 수준을 하락하자 7월말에 이어 이번 달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아만도 테탕코 필리핀 중앙은행 총재는 "때 늦은 통화정책은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키고 장기간의 저금리는 부동산·주식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며 "연준의 금리 인상에 대비해 선제적이고 신축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지난 7월 동남아 국가 가운데 기준금리를 가장 먼저 올렸다. 인도 역시 최근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줄었지만 내년에는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에는 태풍 불지 않을 것"=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0~2013년 4년간 신흥국에 유입된 자금은 1조1,000억 달러에 이른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인 2003~2007년 5년간 유입된 6,970억 달러의 거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때문에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 신흥국 금융시장에는 메가톤급 충격이 몰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5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테이퍼링 시사로 신흥국이 금융위기 조짐을 보였지만 이는 본 게임을 앞둔 리허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흥국들이 위기대응 체제를 서두르는 만큼 내년 6월 총선을 앞두고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터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지난해와 같은 '긴축 발작'(taper tantrum)을 재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현재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등은 외국인 투자 유치에 안간힘을 쓰면서도 연기금 동원 등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의 비중을 낮추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콜롬비아 마우리시오 까르데나스 재무장관은 "정부 부채 가운데 내국인 비중을 높일 방침"이라며 "미 금리 인상의 여파를 완전히 비껴가지는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 충격이 완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역시 외국인의 재투자 때는 세금 공제, 국내 자금의 국채투자 유도 등의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방침이다.
브라질의 경우 경기침체 극복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지난달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68억 달러로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의 경우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번지고 있다. IIF에 따르면 연준의 기준금리 조기인상 우려가 불거진 지난달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신흥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반면 아시아에는 97억 달러가 유입됐다.
또 '취약 5개국'으로 분류되는 인도, 인도네시아의 새 정부가 구조조정 등 개혁 조치를 서두르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웨이상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연준의 테이퍼링 시사는 기습적이었던 탓에 글로벌 시장에 충격을 줬다"며 "연준의 금리 인상은 예고돼 있는데다 아시아 신흥국이 대응체제를 준비하고 있어 금융 혼란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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