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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소방관의 직업은 몇 개?

불 나도, 눈 와도, 이제는 도면 제작까지…




얄궂기도 하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왜 하필 눈이 내렸을까. 덕분에 소방관들이 바빠졌다. 지난 22일, 대통령 취임식을 사흘 앞두고 난데없이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이 아닌 국회로 출동했다. 국회 어딘가에 불이 난 것 인가. 출동한 소방관을 기다린 것은 불이 아니라 눈이 덮여있는 의자 4만 5,000개였다. 불 끄는 것만으로도 바쁜 소방관들은 이제 눈까지 치워야 했다. 소방관들의 화기를 달래주려는 높으신 분들의 따뜻한 배려였을까.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들이 그날 할 일에 주변도로 청소까지 포함돼 있었다. 다행히 언론의 취재로 소방관들은 예정보다 빨리 철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의자 닦기 이외에도 일부 소방서에 본 업무 이외의 업무에 동원돼 그들의 업무를 방해 받고 있는 소방관들이 있다는 것이다.

◇ 현재 소방관은 3D입체화 작업 중

요즘 경기도의 한 소방서는 3D입체화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내근 부서의 여러 직원들이 비번 날까지 와서 도면을 정리하고 출력하거나 직접 작성하고 있다.

이유는 최근 이 소방서에 소방활동 특별 자료조사(구;경방조사) 공문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3D 입체 영상화 대비 층별 평면도를 3월말까지 확보하라는 것이 요지다. 조사 대상 건축물들이 도면을 보관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도면제작은 소방관의 일이다. 이를테면 50층짜리 복합오피스텔이 있다고 하면 도면 50장이 들어간다. 1층부터 50층까지 각 층의 모든 실의 용도를 적고, 소방시설 배치현황을 기입하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피난통로 등 세부적인 사항을 다 파악하고 정리해 도면을 만들어야 한다.

일상 업무들은 그대로다. 한 소방관은 “아침에 출근해서 자신이 사용할 장비들을 챙겨본 후 곧바로 업무를 시작해도 이런 업무들을 하느라 정작 필요한 전술훈련이나 현장 대비업무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다행히 3월말까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일선의 요청에 의해 최종보고기한이 5월말까지로 두 달 연기됐다. 하지만 한 소방관은 “일선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과다한 업무량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 소방관들을 지치게 하는 이중업무



소방활동정보카드와 위험물, 다중이용업소, 소방안전관리자 등의 제반적인 사항은 모두 민원정보시스템에서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민원정보시스템이 처음 도입될 때 서버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작성하기도 관리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소방활동 정보카드의 수기입력과 민원정보시스템의 전자입력을 병행해야 했다. 이 민원정보시스템은 원래 소방활동 정보카드를 대체하는 목적이었지만, 결국 소방검사나 업무 때 들고 나갈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결국 돈만 퍼 들인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더 큰 문제는 시스템들 사이에 연동성이 없어 소방관들이 이중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원정보시스템에 열심히 자료를 입력해봐야 헛수고다. 매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관내 전 소방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통계 내는 ’예방소방행정통계자료조사’에선 이 민원 정보시스템의 DB를 사용할 수 없다. 별도의 액셀파일을 생산해 다시 자료를 입력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이중업무를 위해 1,000명 이상이 한 달 가량의 시간을 들이고 비번 날까지 매달려 통계업무를 하게 된다.

여기에 3D 입체화 작업까지 하게 되면 해마다 바뀌는 현황파악을 위해 실제로 소방관이 쉴 수 있는 날은 더 줄어든다.

◇ 소방관들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소방관들이 대통령 취임식 때 의자 닦기에 동원된 것에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소방관은 대통령 취임식 전에 의자 닦는 허드레 역할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는 자랑스런 사람으로 정식 초청받아 취임식 날 레드카펫 밟으며 당당히 입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며 소방관에 대한 존중을 당부했다.

그렇지만 소방관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소방관들은 화재진압에 동물구조 같은 주민들의 단순 민원업무, 거기다 행정업무까지 높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받는 지원은 열악하다. 인력난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고 노후된 장비를 바꿔달라는 요구도 이제는 지쳤을 정도다.

이유는 정부는 소방업무를 ‘지방업무’라고 칭하며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태이고, 지방은 재정이 바닥나 국가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방관들 사에에서 소방직을 경찰직과 같이 국가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한 소방관은 “소방직을 국가직화해서 지자체의 열악한 예산상황의 현실에 따른 어려운 신규충원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며 국가직 전환을 요구했다.

어찌 되었든 다른 사람을 살리고자, 살고자 하는 자신의 본능을 뒤로 한 채 불길로 뛰어드는 소방관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보답은 너무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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