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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산책] 오두족과 종이책

전철엔 스마트폰 쥔 사람들뿐

모든 지식 인터넷에 있다지만 1차 역주작업 없인 가공 불가

종이책 가치 바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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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는 이어폰, 등 뒤에는 사각 백팩, 칼국수 가락 같은 긴 줄에 이어진 스마트폰. 손은 연신 화면을 밀어대며 시선은 반짝이고 입가에는 내용에 따라 희비의 표정이 연출된다. 정보기술(IT) 기기에 특화된 신인류, 즉 자라목(鰲頭) 체형으로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만지는 모습은 요즘 전철 안 일반화된 풍경이다. 이러다가는 몇 세기 지나면 병원에는 자라목 치료과라는 진료과목이 생겨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책을 읽고 있는 경우란 찾기 어렵고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란 보는 이로 하여금 도리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달라져 종이책은 급속히 퇴장하고 있다. 그나마 가볍고 쉬운 내용, 혹은 아동용이 아닌 학술서적은 아예 설 자리가 없어져 간다. 전공·전문·학술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적이라면 출판사에서 손사래를 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이책 다음 단계인 전자책으로의 이전이 예상된다기에 다행일뿐더러 활용도는 훨씬 높을 것이니 시대에 맞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 역시 활성화된 것은 아닌가 보다. 자료로서 가치는 인정돼지만 그것이 곧 수요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전자책 출판사들도 손을 놓아버렸다.

며칠 전 "전문서적 출판해드립니다"라는 광고 e메일이 왔다. 혹여나 하고 열어봤더니 내용이 가관이다. '100권 이상 필자가 구입해주는 조건' '3년 내에 300권 이상 소비할 수 있는 강의가 보장된 경우'란다. 원고·출판·인세라는 순서와 공식에서 인세가 사라지고 무상출판만 해도 바닥까지 퇴보한 것인데 한 발 더 내려가 필자구입이라니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다. 전문서적의 경우는 아예 그러한 수요조차 창출되지 않는다.

특히 고전에 대한 1차 번역 역주작업은 아예 수요자가 없단다.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한문 고전은 이제 바닥에 이르렀으며 헤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원고를 갖추고 출판사에 타진하면 "국가적 차원에서 할 일, 필요는 인정하지만 자신이 없다"고 안타까움에 동조해주기는 한다.



대형서점도 진열 자체를 거부하며 도서관도 그보다 급한 구입 예정 일반도서가 줄을 서 있단다. 심지어 기증을 해도 "아유! 한자투성이네"라면서 좁은 서재에 공간만 차지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세태가 변하자 대학생들도 그 흔한 필독서였던 사서삼경 7권의 책 이름도 자신 있게 내뱉지 못한다. 그런 책은 안 봐도 되고 내용은 필요하면 스마트폰·인터넷에 다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세계인을 주창하다 보니 시간적으로는 선대와 단절되고 공간적으로는 탈아(脫亞)의 이민족이 돼가고 있다.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문명 이기는 바로 검색엔진이 아닌가 한다. 천하의 모든 정보가 깨알같이 들어 있다. 키워드만 치면 한없이 밀어 올려도 끝이 없다. 거기에 동영상이며 관련 정보조차 곁다리로 연결된 한없는 바다다. 그러니 오두족이 책, 그것도 종이책, 나아가 배우지도 않고 읽을 수도 없고 뜻도 모를 한자를 섞어 쓴 답답한 동양고전이라면 이는 고통의 대상이지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정보의 안내자라든가, 내 정신적 삶의 동반자라는 이유를 갖다 대면 수긍이나 하겠는가.

그래도 기초적 1차 번역 역주작업은 쌀농사와 같다. 쌀이 있어야 이를 토대로 2차 밥과 떡, 3차 식혜와 한과, 4차 추출물을 이용한 생명공학 등 무한한 고급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꽃과 열매를 즐기려면 나무를 가꿔야 한다. 정보의 바다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고급자료로 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샘이 마르고서 어찌 대하를 이룰 수 있으며 작은 물줄기도 없이 어찌 댐이 생기겠는가. 오두족이 아무리 손가락만 움직인 채 천하의 원하는 정보를 다 얻고 지구 밖 지식까지 다 구한다 해도 기록과 증거, 바탕과 원천인 종이책은 두고두고 그 가치가 발휘될 것임을 믿는다. 그러한 종이책을 만드는 1차 산업 종사자가 점차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는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역주작업에 하루해가 짧다.

임동석 건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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