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0~1970년대 서울 광화문 뒷골목의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술집 외상장부(사진)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외상장부는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던 ‘명월옥’의 것으로 ‘사직골 대머리집’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화문 광장 준공을 기념해 30일부터 오는 9월20일까지 열리는 ‘광화문 年歌(연가):시계를 되돌리다’전시회에서 이 외상장부를 포함해 고지도와 그림ㆍ사진 15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28일 역사박물관에 따르면 1910년 이전에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머리집’은 2대에 걸쳐 1978년까지 학계ㆍ문화계ㆍ언론계 인사 등 사회 저명인사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외상장부는 1950년대 말부터 1962년까지 작성된 3권으로 극작가 조성현씨가 2대 주인이었던 이종근씨에게서 전해 받아 보관해온 것이다. 장부에는 경제기획원ㆍ문교부ㆍ서울시청 등 공공기관 25곳, 동양방송ㆍ문화방송 등 언론기관 22곳, 서울대 등 학교 16곳 등 71개 기관에 소속된 300여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특히 진념 전 부총리, 탤런트 최불암ㆍ이순재씨의 이름도 올라 있다. ‘비목’의 작곡가 장일남씨는 이 집의 큰 단골이었다. 외상 술값은 대부분 100원에서 300원 수준으로 1963년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15원이었다. 외상값은 할부로도 갚을 수 있게 했고 특이하게도 이름 대신 ‘필운동 건달’‘대합조개 좋아하는 人’과 같이 손님의 인상착의나 습관을 써두기도 했다. 역사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당시 광화문 뒷골목의 풍속도와 함께 넉넉한 인심과 무한한 신뢰가 배어 있는 신용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며 “도심재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600년 전통의 광화문 명소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 훈훈한 인심과 구수한 맛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창의적 아이디어 생산지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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