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국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화끈한 정치 참여 열기를 미국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바뀐 것 같네요.” 재미교포인 최모(29)씨는 18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율이 46%로 사상 최저인 것으로 나타나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넷은 물론 오프라인 현장에서 20~30대가 활발하게 정치참여를 했던 모습이 채 5년여 만에 완전히 딴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20~30대의 정치참여 열기를 주도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청년층의 정치적 무관심은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의 이 같은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정치에 대해 커져가는 극도의 불신과 무관심은 국가 발전과 경쟁력 강화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 투표율 저조의 주원인으로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을 꼽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은 37.1%로 50대 82.6%의 절반에도 못 미쳤으며 18대 총선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관위는 대학교의 경우 학생 2,000명 이상이 신고하면 투표소를 설치해주고 있는데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교내에 투표소를 세운 대학교가 12개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18대 총선에서는 단 한 곳도 기준을 맞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승인을 통해 3개 대학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데 그쳤다. 20~30대의 주요 정치토론장인 인터넷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선거법을 적용하는 것도 정치적 무관심을 낳은 요인이다. 공직선거법 93조에 따라 공식 선거운동 기간 이전 특정후보나 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인터넷 게시물이나 동영상 UCC를 철저히 규제하면서 인터넷 상에서는 젊은이들 간에 정치적 의견을 주고받기보다는 총선후보를 지원하는 연예인이 주요 검색어로 부상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블로그 등을 이용, 활발한 정치토론이 이뤄지는 등 수십년 만에 젊은이들의 정치참여 의지가 왕성하게 드러나 우리와는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힐러리나 오바마의 경우 자주 대학을 찾아가 청년들의 창의력과 정치참여를 촉구하는 데 반해 국내에서는 이러한 정치토론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혐오증이 극심한 단계에 이르자 일각에서는 의무투표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호주의 경우 투표를 안 하면 20호주달러의 벌금, 아르헨티나는 3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만약 투표율 저조를 막기 위해 의무투표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른다면 20년 가까운 투쟁으로 어렵게 이뤄낸 민주화의 성과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것이 될 게 분명하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학 교수는 “민주화 20년의 선거문화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 등으로 얼룩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밝혔다. 박찬욱 서울대 정치학 교수는 “정치적 무관심의 주범인 여야의 극한대결이 국정마비의 수준에 이르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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