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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들과 결탁,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을 악용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원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거액의 부당이익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이 양도 채권 여부와 원금을 확인할 수 없다는 허점을 이용해 무려 300억대의 지급명령을 신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법무사들과 미리 공모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사들인 뒤 원금 잔액을 부풀려 16억원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로 총책 최모(36)씨 등 9명을 구속하고, 법무사 3명과 나머지 일당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2012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브로커를 통해 원금의 2~6% 값으로 사들인 채권을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으로 원금 잔액을 부풀려 16억원을 챙긴 혐의다.
이들이 사들인 채권은 10~20년 전 건강식품, 도서, 생활용품 등을 할부로 구매한 뒤 대금을 갚지 못한 서민들의 것으로 이들이 확보하고 확인된 채권만 11만명분 470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한 신용조회를 통해 신용등급이 양호한 2만6,851명을 상대로 303억6,000만 원 상당의 지급명령을 신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 등은 합법으로 보이려고 법무사에게 매월 자문료 명목으로 100~130만원 씩을 지불하고 명의를 대여받아 법무사 명의로 소송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 자문료 외에도 건당 5,000원 상당의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채무자로 하여금 법무사들이 소송행위를 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물품을 구매한 뒤 오랜 세월이 지난 채무자들이 남은 금액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점과 대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이 원금 등 사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 채무자가 소송 관련 서류를 송달 받은 뒤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임의대로 부풀린 금액이 지급명령으로 확정된다는 허점을 노리고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채권추심과정에서도 이미 숨진 이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전자 소송을 제기해 해당 가족들을 괴롭혔고, 채무자의 이의 신청으로 각하 처리된 사안에 대해서는 업체 명의를 바꿔 계속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등 지속적으로 채무자들을 괴롭혔다.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전화를 이용해 마치 집행관이나 법무팀인 것처럼 사칭해 주거지나 직장, 유체동산 등을 압류하겠다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돈을 갚으라고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최씨는 수사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사무실을 수시로 옮겨다녔고, 사용한 전화는 통신업자를 매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흉내 내 발신번호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4만회에 걸쳐 금융기관 등에 전화를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고용한 직원들에게는 채무자를 압박하는 방법과 채무자를 다루는 기술, 집행관을 사칭하는 방법, 압류전화 응대수칙 등을 상세히 다룬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 1명당 월 900만 원 이상의 돈을 받아 내도록 독려하고 심지어 성과급을 지급하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경찰은 불법채권추심업체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보고 불법이 확인된 20여 개 업체 대표들을 소환해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경찰은 또 채무 금액이 더 큰 캐피탈 등 금융채권이나 대부채권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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