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여지없이 운명처럼 만나는 사이가 가족이다. 태어난 환경만 보면 불평등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죽음 외에는 그들을 갈라놓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것을 보면 인생의 이치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철학자 괴테는 왕이건 농부이건 자신의 가정에서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이라 했다. 우리 가정은 과연 어떠한가.
어느 때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 절실한 때다. 최근 10세 아이의 시집이 발간되자 곧 폐기된 바 있는데 그 사연인즉 '학원, 엄마'로 대변되는 우리 시대 엄마상에 대한 아이의 잔인한 복수가 묘사된 까닭이라 한다. 자성의 여지를 남긴다. 자녀를 방치하고 동반 자살하며 내 손으로 죽이는 끔찍한 어머니는 예전에는 없었다. 본래 우리에게 '어머니'는 이름만 들어도 늘 가슴이 메이는 이름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그런 아가페적 사랑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성애는 신이 인간에게 맡겨놓은 신성(神性)의 일부라 한다. 지금 그 사랑이 그립다.
눈물로 자녀를 훈육하자. 요즘 아이들은 좀 다르게 자란다. 태어나자마자 어떻게든 웃게 하다가 그래도 웃지 않으면 옆구리를 간지럽게 해서라도 웃게 한다. 슬퍼도 얼른 눈물 닦고 일어서 웃어야 우리 아이 다 컸다고 좋아한다. 눈물 없는 부모가 눈물 없는 자식을 길러낸다. 우리는 종종 TV 등 매스컴에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도 냉소하는 악마의 미소를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분노하던 그 야수의 눈빛도 한번 통곡하고 나면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게 인간이다. 바로 눈물의 힘이다. 슬프고 힘들 때는 흐느낄 줄 알고 기쁠 때는 기뻐서 울 수 있는 감성 가득한 자녀로 양육하자. 눈물에는 한번 울고 나면 기분이 정화되고 세상이 달라 보이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다시 일어서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이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않는 거란다" 영화 '사랑'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모든 실수와 실패, 시기와 분노, 슬픔과 아픔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녹여내는 사랑의 용광로가 가정이다. 가족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며 처음 속하는 사회이다. 그곳의 평가 기준은 사랑과 믿음이다. 교육자 페스탈로치가 주장한 참된 도덕과 인성 교육은 그런 가정에서 이뤄진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지적처럼 미움 받을 용기만 있다면 '사랑'으로 가정의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행복도 기술이라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힘써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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