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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에 악재가 거듭되고 있다. 미국발 글로벌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 금융시장을 챙겨야 하는 중앙은행 총수가 자리를 비우게 됐다 일본이 세계 제2위의 경제국이라는 점에서 세계경제에 대한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의 정치력에도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경제 전반에 대한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산당ㆍ사회민주당ㆍ국민신당 등 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참의원(상원)은 이날 정부가 제출한 다나미 고지(田波耕治) 일본국제협력은행 총재의 일본은행 총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여당이 다수인 중의원(하원)은 이날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참의원의 부결로 동의안은 무효화됐다. 일본은행 총재 임명은 중ㆍ참의원 양원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다나미는 전날 열린 청문회에서 “국민과 시장의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정책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호소했지만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은 “(다나미 같은) 국제금융에 밝지 않은 사람이 중앙은행 일을 잘 할지 의문”이라며 “일본은행은 재무성의 낙하산 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참의원은 지난 12일에도 무토 도시로(武藤敏郞) 일본은행 부총재의 총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무토도 다나미와 같은 재무성 차관 출신이다. 일본은행 총재가 공석 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경제계와 금융시장, 일본은행 내에서는 일본의 국제적 신뢰도 하락과 업무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재 공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일본상공회의소의 오카무라 다다시 회장은 “정치권에서는 국제적인 시각은 안 중에도 없는 논의를 하고 있다”며 “통치능력이 결여된 일본은행과 약해진 후쿠다 정부의 약점을 틈타 시장의 혼란이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직원들의 동요와 사기저하가 나타나고 있다. 이날 총재 인사안이 부결되면서 앞서 임명된 2명 부총재 가운데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부총재가 총재직을 대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8ㆍ9일 열리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 중순에 개최될 선진7개국(G7)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 등 줄줄이 잡혀있는 중요한 경제 일정들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일본은행 총재 임명동의안 부결로 후쿠다 총리의 지도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후쿠다는 야당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토를 “최고의 일본은행 총재감”으로 치켜세우다 동의안 부결사태를 초래했다. 이어 다나미의 지명을 앞두고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와의 대표회담을 시도했으나 거부되는 망신도 당했다. 야당이 무토를 반대한 이유가 재무성 출신이라는 것인데 재무차관을 지낸 다나미를 또 지명한 것이다. 후쿠다 중심의 구심력이 줄어들면서 일본은행 총재 공석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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