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 정적만이 흐르는 레이크 코스 조명등 아래에는 그림자와 함께 골퍼가 무희를 한다. 별로 가득찬 가을하늘과 조명으로 빛나는 흰색모래와 코스전체 길게 뻗어있는 800미터의 호수가 어울리는 절묘한 조화를 바라보며 정열과 사랑이 잉태한 녹색그린으로 발자국을 옮긴다. 현실의 모든 욕망은 어둠과 함께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 온다. 대자연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분수의 물보라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자작나무로 둘러 쌓인 7번 200야드의 파3홀 에서 천상의 그린을 향해 새처럼 날라 가던 이 백구는 붉은 깃발 옆에 안착을 한다.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산골짜기의 메아리를 타고 나팔소리처럼 울려온다. 버디로 기대를 건 욕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오케이 간청을 하여 파(par)를 잡고나니 허망하다. 레이크 8번 홀과 9번홀 사이를 오가는 낭만의 갯 배를 타고 한국에서 제일 길다는 610미터 파5홀에 당도하니 갈 길이 멀다.
왼쪽편의 서구풍 붉은색 지붕의 빌라,드넓은 호수에 비치는 달빛, 코스를 연해 달리는 겨울연가에 나오는 눈 내린 겨울야경과 같은 흰색 설탕의 벙커, 녹색과 검은색이 조화된 페어웨이와 그린 등등 이모든 것은 코스가 만들어내는 야간골프의 장면들이다. 우리는 가야만 하기에 칡흙 같은 밤 속에서 환한 불빛 속으로 조명된 길을 따라 싸늘한 가을 밤공기를 쏘이며 한 가닥 파(par)라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밤길을 재촉하였다. 밤이 깊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고급형 빌라에 몸을 맡기니 잠깐 사이 꿈나라로 날라 가버린다.
골프라는 여인에 홀려 아름다운 설악산을 바라보며 새벽을 연다. 신선한 아침공기가 얼굴을 감싸니 마음의 평화로움이 스며든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북어와 콩나물을 넣고 끓인 황태 해장국은 얼큰하고 시원하여 숙취를 풀어줌과 동시에 원기를 북돋아준다.
설악산의 절경과 동해바다의 일출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려 가슴을 열고 높은 가을하늘과 붉은 티셔츠의 여인과 태양아래비치는 백색모래를 친구 삼아 하얀 비단구름이 만들어놓은 조각작품을 감상하며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페루의 나츠카 라인 광야의 외계인의 흔적처럼 새와 노루가 만들어놓은 아침그린의 뽀얀 도화지위의 드로잉을 감상해본다. 누군가가 “Buddy(친구)”라고 그린 위에 사랑의 표현을 하고 떠났다. 그 사랑의 표현을 하고 떠난 사람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 이런 사람과 애틋한 사랑을 다시 한번 하고 싶다.
파인리즈의 골프코스는 명품으로 치장된 여인처럼 차별화된 곳이다. 코스관리가 너무나 잘된 덕분에 페어웨이에서 아이언 샷을 하면 구두창만한 녹색뗏장이 1미터는 날라간다.
워터헤저드의 연못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게 예술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흰 모래, 그늘집, 도너츠 벙커와 그린, 바위를 품고 있는 벙커, 아일랜드그린 등등 한국인의 정서와 취향을 아름답고 독창적인 설계로 승화시킨 예술작품의 집합체라고 보면 된다.
코스에서 피는 꽃은 외롭게 피어도 아름답다. 40대의 나이지만 고운 자태를 유지한 여인은 보라색 골프복장에서 검은 바지에 붉은 티셔츠로 갈아 입어야만 했다. 여인의 향기와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경관과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요된 변신이었다.
골프코스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동물과 새들과 함께 노는 자연 광장이다. 이 자연놀이터 리즈코스 파 5홀에서 검은 점이 송송 찍힌 보기 드문 참개구리 친구를 만나 보니 너무나 반갑고 사랑스럽다. 그 동안 인간들의 못된 처방으로 거의 멸종에 가깝던 우리 어렸을 적 옛 친구를 그린 위에서 본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페어웨이와 호수주변 에 2만5천 톤의 맥반석모래와 암석을 묻어두고 끊임없는 호수 정화를 한 골프장의 친환경 노력의 소치라고 보면 된다. 공을 찾으러 러프로 들어가니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날라 다니며 골퍼의 시선을 혼란 시킨다. 뒷 팀에서는 그린 위에서 뱀을 보았다고 한다. 짧아지는 가을 하루는 우리골퍼들을 재촉한다.
야간 비행은 레이크 코스에서 부엉이와 존경하는 이광희 골프칼럼니스트 전회장과 파인코스와 리지코스는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에서 붉은 단장을 한 어여쁜 여인 김정애 골프칼럼니스트와 대학 후배 강하씨와 자연이 선사한 명당자리에 코스디자이너들이 수놓은 그린 위에서 내 흔적을 남겨놓았다. 미끌미끌한 온천 욕을 하고 올라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대형 와인 셀라에서 꺼낸 화이트와인과 동해안에서 막 잡아 올린 생선 모듬 회를 안주 삼아 한잔을 마시니 여기가 지상 천국이라는걸 알게 되었다.아 세월은 빨리 간다. 해가 누엿누엿지는 붉게 타는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아쉽지만 다시올 기약을 하면서 파인리즈를 떠났다.
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