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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인물 두 사람을 꼽으라면 히틀러와 스탈린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세계 대전을 주동해 폭력적으로 인명을 학살했던 독재자인 이들은 ‘20세기 쌍둥이 악마’로 불리기도 한다. 그 동안 서구 역사학계에서는 두 사람 중 누가 더 악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데 논란이 있어왔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맞붙은 두 독재체제는 국가 보안기구의 성격이나 대규모 수용소의 이용, 문화적 생산물의 철벽 같은 통제, 시체 더미 위에 건설한 사회적 유토피아 등에서 운영상의 유사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전문가로 불리는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재 체제가 어떻게 달랐는지에 대한 의문을 일찌감치 품었다. 저자는 무엇이 두 독재 체제로 하여금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게 했는지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과 정신상태를 이해하는 데 노력하는 것이 역사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저자의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두 체제의 작동을 근본부터 구조적인 면까지 분석한 비교사 연구서인 책은 독재 탄생의 역사적ㆍ사회적 배경에서부터 개인 숭배, 대중 선동 국가 테러에 이르기까지 독재의 모든 층위를 속속들이 해부한다. 또 히틀러와 스탈린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계층의 삶을 드러낸다. 특히 저자는 혹독한 추위, 소련군의 인해전술 등 그간 모호하거나 일방적으로 내려진 히틀러의 2차대전 패배 원인을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독일과 소련의 기록보존소에서 1990년대 이후에 공개된 기록물과 관련 저서 그리고 당시 인물들의 증언 등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는 두 사람의 지도력 차이가 승패를 가른 핵심요인이라고 결론짓는다. 스탈린은 전쟁을 하면서 군사전략가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직업군인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으나 히틀러는 자신의 전략적 역량을 점점 더 강하게 신뢰했다. ‘독재 체제는 어떻게 가능했나, 왜 히틀러는 세계 대전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스탈린의 체제를 뿌리 뽑는 일에 골몰했던 것일까’ 등 책은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흥미진진하게 해답에 접근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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