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8시 30분께 평창동 자택에서 기자를 맞은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지인
들의 축하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그는 “미처 예상을 못했는데 막중한 책임을 지게 돼
부담스럽다”며 일일히 전화 응대를 했다.
한 내정자는 기자의 방문에 처음에는 당황한 듯 했으나 법률 전문가답게 이내 경제민주화
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에 대해서도
“어차피 청문회에서 밝혀질 것’이라며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원천적으로 방지해야= 3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의 화제는 단연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었다. 그는 “현재 대기업의 폐혜는 공급독점’(monopoly)뿐 아니라 ‘수요독점’(monopsony)에도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대기업들이 계열사의 수요를 독점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계열사는 모기업와 거래가 끊기면 죽는다, 수요독점을 해결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업체에 대한 가격 후려치기 등이 수요독점의 폐해”라고 설명했다.
한 내정자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대해 ‘사후 약방문’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금을 통한 사후규제로 기업을 아무리 옥죈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사전규제를 통해 근본적으로 금지해야 하며, 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감 몰아주기를 사전에 원천적으로 못하게 해야지, 사후에 (세금 등으로 )두들겨 팬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일감몰아주기 규정이 추상적으로 돼 있어 예측가능성이 없다”며 “세법 규정을 참고해 일감몰아주기의 기준을 수치화할 것”이라고 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일감몰아주기로 규정해 제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은 ‘부당하게’라는 부분과 ‘현저히’라는 부분이 추상적이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대기업이 계열사와 거래하면서 30% 이상 높거나 낮은 가격에 거래해 계열사에 이익을 줄 경우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내정자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대해 “증여를 하는 자와 증여를 받는 자가 분명하지 않고, 과세 대상자 입장에서는 ‘증여를 받지 않았는데 왜 세금을 메기느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며 “분명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금산분리와 관련해 한 내정자는 “산업자본이 금융을 소유하든, 금융이 산업자본을 소유하든 폐해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만큼 양자를 분리하는 게 맞다”며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를 어느 수준으로 제한할지는 좀더 연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주장해온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에 대해서는 “기업활동을 위축하는 등 부작용이 더 많고 실효성도 없다는게 이미 판명됐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총수전횡, 소액주주 의결권 강화로 해결해야= 대기업 총수 전횡과 관련해서는 전자투표제 활성화를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전자투표 비율이 50~60%에 달한다”며 현재 쉐도우(그림자) 투표제로 인해 소액주주가 주총에 출석하지 않으면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전자투표 관련 규정을 정비해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활성화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대 말 지구당 위원장 때 박 대통령 만나= 한 내정자는 “어제 오후 5시께 이정현 정무 수석으로부터 내정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이 수석은 한 내정자에게 “대통령께서 한 내정자가 강직한 성품이어서 공정위원장직을 잘 수행할 것 같다고 평가하셨다”고 전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인연을 묻는 질문에 한 내정자는 “제가 변호사나 학자로서의 삶만을 산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과거 정치권에 몸담을 적이 있다”며 “1990년대 말 이회창 총재 시절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을 맞았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박 대통령과 안면을 텄다”고 했다. 한 내정자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 출마를 준비했지만 구미갑과 을이 합병되면서 정계 진출을 포기하고 대구를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구미갑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가 있던 상모동이 있는 지역구이기도 하다.
경남 진주 출신인 한 내정자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육군 일병(보충역 소집)으로 만기제대했다. 부인 송은선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그는 “장남은 공익으로 군 복무를 마쳤고, 연세대 로스쿨에 재학중인 차남은 현역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했다. 그는 “나쁜 일은 안 하고 살려고 노력했다”며 “청문회에서 성실히 답변할 것”이라고 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co.kr
▦1958년 경남 진주 출생 ▦경북사대부고 졸업 ▦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주립대 법과대학원 졸 ▦서울대 법학박사 ▦사법시험 22회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재정경제부 세제실 고문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이화여대 법학연구소장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정부개혁추진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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