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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정체성 혼란과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해외의 젊은 작가 2인이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을 찾는다. 영상 및 설치 작품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데다 둘 다 이번이 한국 첫 개인전인 만큼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모두 오는 3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계속된다.
우선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비디오 작가 제시 존스(35)는 분단이라는 현실적 상황에 주목한다. 그는 1970년대 초반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진행한 집단갈등 해소를 위한 심리치료 영상을 새롭게 재구성한 '또 다른 북(The Other North)'이란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인 배우 11명이 각자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여러 종파와 계층을 대변한다. 1970년대 초반 북아일랜드 분리 운동이 가장 격렬할 당시 주민들이 서로 나눴던 가상의 대화를 대사로 삽입해 한국 배우가 연기한다. 비슷한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이 시대 한국 사람에게 이들의 대화는 왠지 모를 동질감을 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두 나라의 차이를 넘어서 분단 상황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동그랗게 둘러 앉은 배우들 한가운데 설치된 카메라는 대화 내용이나 발언 순서와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360도 빙빙 돌아갈 뿐이다. 이를 두고 작가는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노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또 다른 영상 작품인 '공동체의 이기적 행위(The Selfish Act of Community)'도 만날 수 있다.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배우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소외 당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해왔다. 그러나 집단 심리치료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이번 영상 역시 카메라를 일정한 속도로 360도 회전시키며 촬영, 관객이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긴 보다는 관찰자 입장에서 관망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의 젊은 설치미술가 사이먼 후지와라(31)의 국내 첫 개인전도 주목받고 있다. 일본인 건축가 아버지와 영국인 무용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이먼 후지와라는 어릴 적 아내와 아들을 남겨 놓고 고국으로 떠난 아버지를 그리면서 정서적 방황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혼란 과정을 작품에 녹여내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낸다. 특히 인류학, 가족의 역사, 정치적 현상 등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조형화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지난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이어 싱가포르, 상하이, 대만, 광주 비엔날레 등에 잇달아 초대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적이지만 동성애적 조형 미학이 배어 있는 대작 3점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글에서 제목을 차용한 2009년작 '거울 단계'는 어린 시절 화가의 길을 꿈꿨던 자신의 성장 과정과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거울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또 2009년작 '뮤지엄 오브 인세스트'는 근친상간의 역사와 기원을 조사한 자료와 가족의 관계를 엮어 만든 이야기를 형상화했으며 2012년작인 '재회를 위한 리허설'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아버지와 다도(茶道)를 통해 재회한 이야기를 담은 설치와 영상 작업이다.
오는 9월에는 사이먼 후지와라가 직접 내한해 작가의 예술세계에서 두드러지는 연극성을 퍼포먼스로 펼쳐 보일 예정이다. (02) 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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