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인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모두가 공화당원이고 우리는 모두가 민주당원"임을 선언했다. 미국의 초당적 협력주의(bipartisanship)를 거론할 때면 이 경구는 항용 등장한다.
미국을 20세기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 데 원동력이 됐던 것이 이 초당적 협력이었다. 미국의 국익 앞에만 서면 정당은 작아졌다. 루스벨트의 뉴딜과 레이건의 '강한 미국'이 가능했던 것도 초당적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사회의 모든 다양한 요구와 이익들을 타협의 정치라는 용광로 속에 녹여내는 미국 민주주의 모델의 상징이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국민들로부터는 "제발 좀 싸우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온 한국 정치에서는 늘 부러운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미국 정치에서도 초당적 협력의 전통에 금이 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정부 셧다운까지 가져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이미 오래됐다.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의존하고 하원의장은 대통령을 위헌 혐의로 고소까지 하는 일도 벌어졌다. 내년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갈등은 깊어진다.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연설을 밀어붙이는가 하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빨리 추진하려는 오바마의 요구를 상원이 거부해버렸다.
문제는 이런 균열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퓨 리서치(Pew Research)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치의 양극화는 점점 더 구조화되고 있다. 첫째, 지난 20년 동안 무슨 일이든 한 쪽 편을 드는 '묻지 마 보수'와 '묻지 마 진보' 유권자들이 두배가량 늘었다. 둘째, 감정적 혐오감도 크게 늘었다. 민주당을 미워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17%에서 43%로 뛰었고 공화당을 혐오하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16%에서 38%로 급증했다. 셋째, 공화당 지지자들끼리만 친구가 되고 민주당 지지자들끼리만 친구가 되는 비중도 확 늘었다. 넷째, 이념적 성향에서 중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49%에서 39%로 줄었다. 다섯째, 티 파티 등 강한 이념적 주장을 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여섯째, 타협은 양보가 아니라 자기 편을 더 얻는 것을 뜻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세상은 점점 더 다원화·복합화·융합화되고 있는데 정치는 양극화·단순화·파벌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론가들은 공감과 조율·타협을 필수적인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 현실은 미움과 배제, 양극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초당적 협력의 전통이 미약한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더 크게 보인다. 최근 정치개혁이라는 말이 부쩍 눈에 띈다. 하지만 그 단어가 이름값을 하려면 정치인 사정이나 정당 행태를 고치는 문제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 그런 문제들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적대의 정치와 양극화 정치를 해소할 수 있는 근원적인 구조 개혁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그런 성찰의 무게가 없는 정치개혁은 식상하다는 말조차 식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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