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 사태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 통합적 재난 관리와 컨트롤 타워 역할 수행을 위해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제 역할을 못해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초기대응 부실, 불분명한 컨트롤 타워, 국가-지자체의 공조대응 미흡 등 시행착오는 과거와 다름없이 반복돼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현시점에서 왜, 무엇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우선 안전처의 실효적 컨트롤 타워 기능 발휘가 곤란하게 돼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명시된 중앙·지역 사고수습본부, 중앙·지역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상황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등 몇몇 임시기구를 설치한 것은 재난 컨트롤 타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안전처가 감내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는 관련 부처가 컨트롤 타워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안전처도 업무 범위와 한계를 명확하게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 제역할 못한 위기대응 시스템
둘째, 국가-지자체 간의 유기적인 협조와 공동대응 문제다. 재난이 발생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일차적으로 대응함과 동시에 중앙정부에 보고해 협업체제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보건복지부는 비합리적인 비공개 논리로 지자체와 정보 교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장의 한밤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비난 여론에 떠밀려 병원 이름 등 관련 사실을 뒤늦게 공개해 뒷북 대응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행태는 재난의 대응 복구과정에서 국가-지자체 간의 협업이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제도화되지 못한 상징적 해프닝으로 반드시 시정돼야 할 과제다.
셋째, 지도자의 위기관리 리더십이다. 지도자의 책무는 평소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며 위기 발생시 국가자원 동원과 국민통합을 통해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것이다. 감염 사태가 열흘 이상 지속·확산되는 상황에서 총리대행이 유럽으로 출장을 간 것은 위기의식의 부재 외에 어떤 사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과거 중국 쓰촨성 대지진, 미국의 동북부 폭설이나 에볼라 사태시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도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을 보좌하는 전문가 참모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넷째, 겉도는 위기관리 매뉴얼의 효용성 문제다. 그간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 대응의 만병통치약처럼 관리해왔다. 그러나 국가·지자체 공무원들이 재난 발생시 소속 기관이 조치할 매뉴얼 내용 숙지가 안 된 상황에서 이를 활용한 재난 대비 훈련도 형식적으로 실시해온 것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현실에서 재난 발생 초기 정부의 늑장·부실대응은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앞으로 안전처는 매뉴얼을 활용한 훈련 실시 여부와 각급 기관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매뉴얼 내용 숙지 정도를 평가해 유사시 조건반사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숙달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자기보호 태세 구축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재난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국민 개개인은 국가·지자체에 국민보호의 책무를 요구함과 동시에 자기보호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또 타인과 지역 공동체 등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자세가 필요하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원거리를 이동해 골프를 치고 여행을 가는 행동은 그야말로 이기심의 극치이자 후안무치한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향후 공공성을 훼손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법에 따른 엄격한 제재와 더불어 개인과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공공성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역량 강화·예방 인프라 구축 최선을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재난을 미리 짐작하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재난을 당한 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고장 난 국가재난 대응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온 역량을 투입해 기본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재난 예방을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첨단장비와 전문인력 확보 등 인프라 구축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재난은 결코 기다려주거나 사정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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