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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10월 14일] '주체'의 마지막 소원

박 시 룡 논설실장 약간 깡마르고 꼿꼿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 거물의 풍모같은 것을 느끼게하는 짧고 직선적이며 단호한 말투. 몇해전 어느 연구모임에서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를 봤을때 받은 첫인상이다. 북한의 실상을 중심으로 한시간 남짓 그의 발표가 있은 뒤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른바 ‘주체사상’을 확립한 장본인이자 김일성시대 실세중 실세였던 그는 공산주의의 허구성과 북한의 비참한 실태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토로했다. ‘ 거침없고 단호한 자기부정 질문이 이어졌다. 순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몇가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주체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빠질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했다 ‘ 그것 아무것도 아니야. 당시 소련이 중주국으로써 공산세계를 좌지우지 할 때였으니까 너무 소련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자성을 갖고 살아보자는 거였지.’였다. 파고들면 나름대로 논리적 얼개가 없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과거인 주체를 폄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울러 주체사상이 마치 대단한 것인양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간다고 덧붙혓다. 당시 중남미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잠시 반짝하다 사라진 종속이론과 대응되는 풍조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대를 이어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정일과 핵무기문제 등도 비중있게 다뤄졌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아버지뻘 입장에서 노골적인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세습통치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타계전 북의 ‘3대 세습소식에 화가 치밀어 쓰러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의 핵보유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북의 핵무기개발은 김정일의 주도하에 비밀리에 이뤄졌기 때문에 정확히 모른다면 서너개정도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는 추측을 덧붙혔다. 정말 모르는지. 정치적 제스처였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그의 명쾌한 진단이지 않았나 싶다. 해방이후 불과 몇십년만에 북한은 늘 기근에 허덕이며 심한 경우 수십만명이 굶어죽는 최빈국이 된 반면에 한국은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경제대국이 될 정도로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이유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진단했다. ‘북한은 소련에 줄을 서고 남한은 미국쪽에 섰기 때문이지.’ 북한은 공산주의를 택했고 남한은 자유 시장경제를 택했다는 딱 한가지 이유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짧고 거칠지만 정곡을 찌르는 비유법이었다. 못이룬 젊은이들과의 토론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때문인지 자신을 ‘말년에 모든 것을 버린 늙은이’로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한국의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과 자유롭게 토론할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상상은 가능하지만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그의 바램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핵을 앞세워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를 멋대로 좌우하려 드는 북한이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될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전 북한의 노동당 창당기념일에 그는 타계했다. 오랫동안 북한의 통치이념이었던 주체사상도 역사속으로 묻히게 됐다. 사실혼관계의 부인사이에 아들하나를 두었고 꽤많은 재산과 저서도 몇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현충원에 안장키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일생, 사상과 고뇌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은 분단이 낳은 산물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을 해결할수 있는 지혜를 남기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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