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는 고려 31대 국왕인 공민왕(1330~1374)을 모신 곳이 있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을 들어서 50m 정도 가서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망묘루다. 그 옆에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고 보통 '공민왕 신당(神堂)'이라고 부르는 자그마한 사당이 있다. 조선이 창업된 직후인 1395년(태조 4년) 종묘가 세워질 때 공민왕 신당도 함께 건립됐다고 한다. 조선의 국가사당인 종묘에 망한 왕조 국왕의 사당이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태조 이성계의 의도는 공민왕 아우라의 이용이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몰아내고 이후 창왕ㆍ공양왕까지 갈아치우며 결국 자신의 왕조를 연 그였기에 늘 정통성 문제에 시달렸다. 이에 공민왕 시대로의 복귀를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100여년에 걸친 몽골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ㆍ개혁정치를 편 사람이 공민왕이다. 공민왕 신당은 고려와 조선의 정치는 이어진다는 상징인 셈이다. 사진처럼 공민왕과 부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한 그림 속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왼쪽에 보이는 그림 세 폭은 공민왕이 그렸다고 하는 준마도(駿馬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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