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7월25일, 프랑스 국왕 앙리 4세가 신앙의 옷을 가톨릭으로 갈아입었다. 네번째 개종이었다. 최초의 개종은 7세 때인 1560년. 세례를 받으며 출생(1553년)했으나 방계 왕족인 부모들의 개종으로 위그노(프랑스 신교도)가 됐다. 두번째는 위장 개종. 종교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성사된 신교도인 그와 구교도 국왕의 공주 간 결혼식 때 구교도가 하객으로 참석한 신교도를 척살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에서 살아 남기 위해 가톨릭으로 변신했다. 궁정에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간 직후 신앙도 되찾은 그는 신교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며 연승을 거뒀다. 마침 직계 왕통이 끊어져 프랑스 왕위까지 차지해 부르봉왕조를 연 그는 ‘화합과 관용’을 표방했으나 남부지역과 파리 시민들은 신교도인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파리 입성을 거부하며 버텼다. 결국 나라의 통일을 위해 앙리 4세는 가톨릭을 택했다. 국민들은 그를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구교도 핵심세력은 에스파냐 왕족을 불러 ‘진짜 프랑스 국왕’이라고 맞섰지만 그는 왕권을 확고하게 다졌다. 비결은 경제부흥. 명재상 쉴리 공작을 중용해 채무로 허덕이던 재정을 탄탄한 흑자기조로 돌리고 도로와 운하를 뚫고 상공업을 발전시켰다. 캐나다 퀘벡 식민지 건설도 그의 치적이다. 국민들의 삶도 펴지며 일요일이면 닭고기와 야채에 포도주를 넣어 졸인 요리인 ‘코코뱅’을 즐기는 전통이 생겼다. ‘낭트 칙령’을 발표해 종교로 인한 차별을 없애는 데 전력했던 그는 끝내 구교도의 손에 암살(1610년)됐으나 프랑스는 강대국의 기반을 다졌다.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가장 뛰어난 국왕’으로 프랑스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종교적 집착에서 벗어나 ‘국가’를 선택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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