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G7 정상들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자리에서 별도로 회동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헤이그 선언'을 채택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제의로 마련된 90분간의 회동에서 이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이상 (선진국 모임인) G8 회의에 러시아를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벤 로즈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이 밝혔다. G7 정상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략을 바꿀 때까지 이 같은 조치를 '잠정'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릴 예정이던 G8 정상회의는 사실상 취소됐다. 대신 G7 정상들은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6월 만나기로 했다. 이들은 아울러 친러 성향이 짙은 우크라이나 본토 동부 지역 진격 등 푸틴의 추가 도발이 나타날 경우 에너지·금융·국방 등 러시아 경제의 핵심 분야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추가 제재를 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강경하게 맞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헤이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G8은 비공식 클럽이며 누가 회원카드를 발급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애당초 회원을 쫓아낼 수도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G8 체제에 전혀 연연해하지 않으며 G8 회의가 열리지 않아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롱 섞인 대응과 달리 러시아 안팎에서는 서방국의 제재조치가 야기할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안드레이 클레파치 러시아 경제차관은 서구권의 압박으로 러시아에서 이탈한 외국인 자금이 올 1·4분기에만도 70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러시아 당국이 불과 열흘 전 예상한 규모(500억달러)를 초과한 수준이며 지난해 전체 이탈자금(630억달러) 보다도 많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러시아에서의 자본 엑소더스가 최대 1,300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FT는 러시아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 기업들이 러시아 내 자기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본국에 송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계 컨설팅사인 KPMG는 "지금까지 러시아 진출기업들은 현지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수익의 대부분을 러시아 내에서 재투자해왔다"며 "(서방국 제재 심화로) 자금을 한번 철수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클레파치 경제차관은 러시아의 지난달 경제성장률(GDP)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3% 증가해 1월(0.1%)에 이어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연환산 물가상승률은 6.9~7%에 달했다며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 속 물가상승 현상)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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