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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신화적 로맨틱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지난 23일은 미 경제공황 시대였던 1930년대 초 미 대륙을 누비며 은행을 턴 연인 강도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사진)가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 깁스랜드의 한적한 샛길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의 총탄세례를 받고 죽은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 범죄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하고 또 로맨틱한 커플이었던 둘은 시대상황이 낳은 산물이었다. 당시 경제공황을 맞아 집과 직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은행과 정부기관에 대항한 보니와 클라이드는 그들에게 영웅이나 다를 바 없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강도질과 로맨스가 액션과 낭만이 넘치는 로맨틱한 전설처럼 여겨지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제목으로 상영된 아서 펜 감독의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1967) 때문이다. 개봉 당시 과다한 유혈폭력 때문에 큰 논란이 됐던 이 영화는 폭력을 예술형태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보니 역의 페이 더나웨이와 클라이드 역의 워런 베이티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명작이다. 클라이드의 형수로 나온 에스텔 파슨스의 조연상 등 2개의 오스카상을 받았다. 특히 보니와 클라이드가 경찰에 의해 기습총격을 받고 사살되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찍은 라스트 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장렬하고 격정적인 죽음의 장면이다. 둘은 1934년 5월23일 아침 회색 포드를 몰고 깁스랜드의 한적한 샛길을 달리던 중 잠복 중이던 6명의 경찰이 쏜 180여발의 총알을 맞고 죽었는데 보니는 손에 조반용 햄버거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보니는 불과 23세 그리고 클라이드는 24세였다. 둘 다 텍사스 달라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0년 한 파티에서 만나 공동 운명체가 되어 서쪽으로는 애리조나와 북쪽으로는 미네소타까지 휩쓸고 다니면서 은행과 주유소와 구멍가게를 털었는데 강도행각 중 경찰을 비롯해 모두 11명을 살해했다. 그런데 둘은 무능력한 범죄자들이었다고 한다. 작은 마을의 주유소나 가게를 털고도 한 푼도 못 건진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둘은 영화 속의 더나웨이와 베이티와는 달리 보니는 키가 165㎝에 불과했고 클라이드는 체중이 불과 57㎏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신경과민증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당시 하나의 신화적 커플로 여겨진 까닭은 둘의 뜨거운 사랑과 함께 끊임없이 경찰을 피해 도주하면서도 늘 말쑥하게 차려 입고 보니는 시를 쓰고 클라이드는 색소폰을 부는 등 로맨틱한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젊은 배우들인 힐라리 더프와 케빈 제거스가 각각 보니와 클라이드로 나오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가 현재 루이지애나에서 촬영 중이다. 여류 감독 토냐 할리는 "이 영화는 신판이 아니라 인물 위주의 러브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거 자기 역을 10대에게 인기가 있는 가수이기도 한 더프(21)가 맡았다는데 대해 최근 더나웨이(68)가 "최소한 진짜 여배우를 쓸 수는 없었는가"라고 쏴대 화제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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