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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매장 직원이 너무 안 팔리는 보석 가격표에 실수로 '0' 하나를 더 붙였더니 얼마 안돼 품절됐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격에 대한 뇌의 반응은 '비싸다=좋다' '싸다=나쁘다'처럼 매우 단순하다. 그래서 신상품을 출시하는 회사들은 가격을 비싸게 책정한 뒤 나중에 대대적인 할인정책으로 대량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곤 한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지난 2009년 실시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설문조사에서 한식(30%), 한복(28%), 한글(16%) 순으로 나타나 한식에 비해 한복의 영향력이 뒤지지 않았다. 한복은 복을 부르고 액운을 막는 성스러운 의복이며 국격(國格)을 상징한다.
공짜 체험·협찬 등 부추겨선 안돼
하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한복은 '입기 불편하다, 비싸다, 결혼 후 입을 일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맞춤시장은 붕괴 직전이다. 솜씨 좋은 한복 장인들이 자취를 감춰가면서 한복은 명맥이 끊길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나라 대통령ㆍ장관ㆍ국회의원ㆍ구청장 등 많은 정치인들은 한복사랑을 외친다. 국무회의 한복 입는 날, 한복 무료입장, 한복 출근 등 한복사랑 립 서비스가 요란하지만 범국가적ㆍ지속적으로 펼치는 한복사랑 운동이나 당국의 한복업체 지원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10년간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1조5,711억원이 투입된 반면 한복산업과 한복장인에게 얼마나 지원했을는지 궁금하다.
야후재팬이나 구글닷컴에 '한복체험(韓服体験ㆍhanbok experience)'을 검색하면 한국관광공사와 서울시의 무료 한복 체험 안내 공식 페이지들과 외국인 체험담들이 첫 페이지에 도배돼 있다.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에서도 문화관광부 후원하에 무료로 '외국인 한복체험'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한복에 대한 첫인상을 공짜 혹은 싸구려 이미지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어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일본은 다양한 기모노 유료 체험을 통해 기모노의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한복을 공짜로 요구하는 곳은 놀랍게도 국가기관ㆍ공기업 등에 만연돼 있다. 해외에 봉사활동을 가거나 한국의 미를 알리고자 하는 사람ㆍ단체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해외에서 애국을 하겠다면서 스스로는 한복을 폄하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 대학교나 지자체에서 시민들에게 '장롱 속 한복'을 기증받아 중앙아시아 등 교포들에게 기증하고 있다. 아름다운 일이지만 한복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면 단 한 벌이라도 한복을 구입해 기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외에 청년봉사단을 파견할 때 한복의 미를 알리려 한다면 한복을 구입해 대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모양새가 좋을 것이다. 한복 수요 감소를 국가가 막을 수는 없지만 국가가 한복산업 붕괴를 방치ㆍ조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복산업 활성화 적극 나서야
정부는 이제는 한복산업 활성화 정책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통계청의 사업체 기초통계자료(2010년)에 따르면 한복점 수는 4,500개로 급감했으며 남은 한복점도 대부분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앞으로 몇 년, 혹은 몇 달도 버틸 수 없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어 이들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문화의 근본이 되는 전통의복은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하루빨리 한복의 근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국제회의나 국가 주관 패션쇼 등에 참여하는 한복업체를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세제 혜택도 줘야 한다. 한복이 일본 기모노의 아류가 아닌 세계의 한복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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