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속도가 느리고 일반적인 걸음걸이인 평보는 다시 세가지로 나뉩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내용을 좀더 상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평보는 말의 보폭에 따라 표준이나 보통(medium)·수축(collection)·신장(extension)으로 구분됩니다. 보폭을 조절하는 것은 상당히 고급 기술에 해당되지만 이론은 미리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전문 승마 선수들도 말에게 보내는 신호를 아주 민감하게 조정해 보폭을 변경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의 선생님들이자 오랜 기간 말과 함께하신 전문가들의 설명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리스트인 김정근 한국마사회 승마레저팀장께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마사회 승마단 감독도 역임했고 제가 책을 쓸 때 감수도 해주신 분이죠.
우선 충분히 몸을 푼 후 말에 올라탑니다. 고삐를 팽팽히 해서 잡고 허리를 편 채 보통 평보를 시작합니다. 다리로 말의 몸통을 잘 감싸고 출발합니다. 마장에 큰 거울이 있다면 거울을 보면서 연습합니다. 말의 앞발 발자국이 난 자리로 뒷발이 디뎌진다면 이게 표준 평보입니다. 고삐 강도와 다리의 강도를 최대 100이라 했을 때 고삐와 다리 강도를 50으로 기준을 정합니다. 이때 기승자가 좋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서 허리는 펴고 시선은 멀리 바라봐야 합니다.
이제는 다리의 강도를 더 증가시켜 더 꾹 눌러주고 고삐를 60의 강도로 높여줍니다. 말의 몸이 약간 움츠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거울을 보면 앞발 발자국에 뒷발이 못 미칩니다. 수축 평보입니다. 앞다리가 표준 때보다 높게 들려져 짧은 걸음걸이로 걷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는 신장 평보를 해볼까요. 다리를 더 자주 꾹꾹 눌러줍니다. 눌러주는 빈도와 강도를 높이는 게 중요한데 눌러주니 말이 앞으로 쭉 나아갑니다. 고삐 강도는 40으로 표준의 50보다 약간 풀어줍니다.
주의할 점은 말의 속도가 빨라져 속보로 나아가게 하는 정도는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팀장은 말합니다. "보폭 조절을 위한 부조의 강도는 말마다 다 다릅니다. 기승자의 체형도 제각각입니다. 자신이 타는 말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감각을 서로 맞춰가야 합니다."
선수들은 보통 이 세 가지 보법 중 신장 평보를 우선 연습한다고 합니다. 말의 몸이 펴진 상태에서 걷기 시작해 보폭을 줄이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랍니다. 보폭 변화는 평보보다 좀더 빠른 속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고 기승자도 몸으로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걷는 말을 정지시키는 방법도 알아야겠지요. 처음에는 고삐만 당기면 말이 멈추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강도 조절을 잘못해 말이 반항한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말의 움직임을 정지시키려면 주먹은 꼭 쥐고 체중을 약간 뒤로 옮겨야 하는데 보통 엉덩이가 안장에 잘 고정된 상태에서 어깨를 뒤로 약간 젖혀야 합니다. 이때 종아리는 말의 몸통을 잘 감싸고 있어야 합니다.
고삐를 쥔 양손이 살짝 자신의 배꼽 방향으로 당겨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만약 말이 서지 않는다면 뒤로 젖히는 강도를 높이고 급정지하는 경우에는 다음부터 강도를 줄입니다. 지금 타고 있는 말의 부조 반응에 대해 자신 스스로가 몸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말이 잘 정지한 후에는 꼭 쥐고 있던 두 주먹의 힘을 빼 재갈로 인해 아팠을 입을 편하게 해줍니다. 이런 게 말과의 대화입니다.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 후 잘 통했을 때는 이에 대한 답으로 입을 편하게 해주거나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말이 알아듣고 기승자의 신호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학습효과 같은 건데 말과의 교감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이런 교감을 위해서는 기승자의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말이 신호에 맞춰 잘 멈췄는데도 고삐를 계속 당기고 있으면 말은 오해를 하게 되지요. 이런 오해 없이 승마를 즐기려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에게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1000일간의 승마표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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