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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양적완화 조치에 따른 의도적인 엔화가치 하락이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을 노골화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WSJ 주말판은 씨티뱅크의 보고서와 시라카와 마사이키 BOJ 총재의 설명을 인용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20일 시라카와 총재는 "15조엔 규모의 엔화대출 프로그램으로 국외자산을 인수하려는 일본 기업이 엔화를 다른 통화로 바꾸면 자금흐름을 강화하고 엔화강세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일본 은행들이 헤지펀드 등 비일본 금융기관에 대출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BOJ는 자국 시중은행에 엔화자금을 0.1%의 금리로 공급하며 엔고 저지를 위해 여신을 늘렸다. 지난해 일본의 국내여신이 1% 증가한 데 반해 국외여신은 20% 늘었으며 일본 기업의 해외 M&A는 2년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분석기관 딜로직에 의하면 일본 기업은 올해 해외 M&A에 1,100억달러를 투입, 1,610억달러의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WSJ는 일본은행의 이런 조치가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권 신흥국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카시마 오사무 씨티뱅크 수석 전략가는 "통화기조 완화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이 엔저 유도와 연계될 경우 선진국의 완화정책으로 이미 고통 받고 있는 신흥국이 충격에 휩싸일 것"이라고 전했다. 다카시마 전략가는 엔ㆍ달러 환율이 90을 넘어서면 신흥국의 고통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이 조치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WSJ는 보도했다. 일본은행의 엔화자금 운용규모가 15조엔인 데 반해 하루 세계외환시장에서는 4조달러의 자금이 이동하기 때문에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도 초완화 기조 속에 낮은 금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2005ㆍ2007년 같은 '엔캐리 트레이드'가 재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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