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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낮추고 더 비워라" 조선 명문가의 가훈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br>정민·이홍식 지음, 김영사 펴냄


"더 낮추고 더 비워라" 조선 명문가의 가훈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정민·이홍식 지음, 김영사 펴냄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언제나 ‘사물은 가득 참을 꺼린다(物忌盛滿)’는 말을 생각하며, 이 때문에 잠자리에 누워도 잠들지 못하고, 밥상을 앞에 두고도 먹기를 잊었다. 전전긍긍하며 넘치는 것을 떠내고 덜어낼 것만 생각했다.” 조선초기 정치적 격동기에 벼슬자리에 올라 공신으로 추대되고, 병조판서ㆍ예조판서ㆍ대사성 등 삼정승의 요직을 모두 역임한 신숙주(1417~1475)의 시문집 ‘보한재집(保閑齋集)에 실린 가훈의 일부다. 대대로 집안이 누린 복이 차고 넘치니, 이 복이 변하여 화가 되는 일이 없도록 자손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특히 그가 남긴 말 중에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는 글귀가 있는데 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사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웅 호걸은 그 만큼 위험부담이 따르는 것을 잊지말고, 항상 몸과 마음을 더 낮추고 더 비워서 근면하고 신중한 사람이 되어주기 만을 바랬던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요즈음 유언 하면 ‘상속’이 떠오르고 가훈하면 ‘잘 살자’가 먼저 떠오르는데,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조선은 ‘아버지의 나라’였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들어서면 따끔한 편지를 써서 격렬하게 나무랐고, 벼슬길에 나서면 상황에 맞는 당부를 잊지않고 적어주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훈계는 자식 특히 아들에게 삶의 지침이자 범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진중함이 실려있다. 한문학자로 드물게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와 같은 학과 이홍식 교수가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문과 유언을 묶었다. 책은 신숙주의 ‘보한재집에 수록된 가훈, 윤선도(1587~1671)가 1660년 나이 74세에 함경도 귀양지에서 큰아들 인미에게 남긴 훈계, 숙종조 남인과 노론의 당쟁(기사환국) 와중에 남인의 모함으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았던 김수항(1629~1689)이 죽기 전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 등이 수록돼 있다. 자녀 교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요즈음 명문가에서 대대로 내려온 가훈과 유언은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실된 마음가짐을 갈고 닦으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엄하게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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