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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생명 안전지대 '솟대 101' 구축하자

안전망 부실한 기초생활보장제도 복지 공무원 늘린다고 해결 안돼

주민센터·복지관 앞에 솟대 세우고 긴급복지·응급의료 콜 101로 통일

사회 소외계층 말에 귀 기울여야


지난해 2월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묻힐 뻔했던 자살 사건들이 연이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사회의 관심은 잠시뿐 냄비처럼 끓었다가 식어버리는 관행은 예외 없이 되풀이됐다.

3월에는 의사 집단휴진에 밀려 잠잠해지더니 4월 이후에는 세월호 참사로 묻혀버렸다.

냄비를 끓게 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지만 냄비 속의 음식을 요리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문제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답이 되지 못한 데 있다. 긴급 복지지원 제도도 뒤늦게 알려졌다. 일이 터질 때마다 일선의 복지공무원들은 죄인인 양 숨죽여야 했다. 마치 잠재적 자살자들을 발굴하지 못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처럼. 지난해 11월 충남 당진의 부자 자살사건을 계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지난해 말 '벼랑 끝의 사람들: 진단과 대책'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복지전문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사회복지전공자들마저도 이제는 자살사건에 무뎌졌는지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들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존마저도 보장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제도를 만들었던 학자들은 일제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재산과 근로능력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공식을 포기하라고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점으로 수급자에 선정되면 모든 급여를 받지만 수급자에서 탈락하면 급여를 하나도 받지 못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문제가 줄곧 지적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춤형 급여로 개편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1년간 계류 중이다. 통합형 급여냐 맞춤형 급여냐에 대한 학술적·정치적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이 땅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어떤 사회안전망 제도를 제안하든 간에 예산을 늘리고 복지공무원을 늘린다고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공무원을 얼마나 늘려야 찾아가는 복지, 발굴하는 복지가 가능해질까. 복지예산 속에 숨은 무기력과 도덕적 해이, 부정수급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알 만한 복지전문가들은 다 안다. 엉성해 보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人間) 관계를 새로 복원하는 데 있다. 친인척과 이웃 간 유대는 갈수록 소원해지고 있다. 물질주의와 저출산의 고착화는 사람 사이의 연대를 더욱 와해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웃과 사회가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그 빈자리에 현대판 '솟대'를 세우자. 솟대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징이다. 이 솟대를 읍면동 주민센터와 보건소·사회복지관 앞에 세우자. 취지에 공감하는 병원과 약국에도 세우자. 교회와 사찰에도 솟대를 세우자. 화려하고 높아만 가는 교회는 소박하고 낮은 곳으로 열렸으면 한다. 솟대는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찾아갈 수 있는 안전지대(safety zone)가 되도록 하자. 사회는 아픈 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솟대를 세우고 생명과 복지의 핫라인 '101'을 누르도록 하자. 101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건너온 101명의 청교도들을 상징하며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긴급복지와 응급의료 전화는 101로 통일하자. 오늘도 벼랑 끝에 서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이고 도움을 준다는 믿음이 생길 때 이들이 찾아와서 마음을 열 것이다. 정부가 찾아가는 복지 패러다임은 국민 스스로 찾아오는 복지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솟대 101을 제안한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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