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감투를 쓴 것도 아니지만, ‘백범(白凡:백정이나 범부라도 애국심이 다 같았으면 하는 마음)’을 지을 때의 마음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낮은 곳에서 끝까지 싸웠다는 면에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촛불과 같은 존재입니다. 위대한 애국자, 영웅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백범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려 했습니다.” ‘미실’ ‘논개’ ‘영영이별 영 이별’ 등 역사소설을 써 온 소설가 김별아(39ㆍ사진)씨가 백범 김구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백범’(이룸 펴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4살 꼬마 김창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며 해방 후 미군이 보낸 수송기를 타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는 김구의 모습을 책에 담았다. 책에는 역사적 기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 백범의 면모가 애틋하다. 27살에 만났던 17살 약혼녀 여옥이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괴로움, 49살에 아내 최준례를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쓰라린 마음 등 백범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인간적인 아픔이자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가 본 백범의 모습은 ‘슬픔’의 결정체였다. 책의 소 주제도 그래서 슬픔으로 일관되게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대학 새내기로서 그의 시대를 읽었을 때 나를 장악했던 감정이 분노였다면, 이십년 후에 다시 읽는 나를 지배한 감정은 슬픔”이라며 “슬픔은 분노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낮고 질기고 도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물한살때 일본 중위 스치다를 난도질하다시피 죽인 백범의 속에는 분명 짐승이 한마리 있었던 것 같다”며 “그는 속에 있는 짐승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 자기와의 싸움을 한번도 중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우는 과정,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세력이 사분오열을 거듭해 임시정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시기 그리고 의열단을 꾸려 외로이 일본에 대항했던 과정을 백범일지와 대한민국임시정부사 등 관련사료를 통해 백범을 되살려냈다. 사이사이에 이봉창ㆍ윤봉길 등과 얽힌 일화를 곁들여 당시의 절박함을 묘사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백범이 위대한 것은 그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데 신념은 변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했던 인간”이라며 “그에게 종교이건 사상이건 고정된 것이 없었지만, 정도(正道)라는 한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그가 위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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