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 중동 지역의 접점에 위치한 크림반도는 수백 년에 걸쳐 훈족, 그리스, 비잔틴 제국, 몽골 제국 등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지배를 받아왔다. 크림반도는 1783년 예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처음으로 러시아 제국에 병합됐다. ‘얼지 않는 항구’를 얻기 위한 러시아의 영토확장이었다.
이후 줄곧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크림반도는 19세기 중반(1853~1856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충돌로 빚어진 ‘크림전쟁’의 무대가 된다. 남하 정책을 펴고있던 러시아 제국과 이를 저지하려던 오스만 제국 및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전쟁이었다.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 영국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이 전쟁에서 활약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에서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소련)이 들어선 뒤 몇 년 간 이어진 내전 동안 반(反)혁명 백군의 최후 거점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1921년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 산하 크림 자치소비에트공화국이 설립됐다.
크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크림 남부 세바스토폴에서 1941년 10월부터 1942년 7월까지 250일 동안 벌어진 나치 독일군과 소련군의 공방전은 2차 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양측에서 4만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결국 크림은 나치의 수중에 들어갔다.
1944년 소련군이 다시 크림 반도를 탈환하자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나치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약 20만명의 크림 내 타타르족 모두를 우랄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이주민 중 절반 정도가 고된 이주 와중에 굶주림이나 질병 등으로 숨졌다.
타타르족은 소련 붕괴를 전후한 1988~92년 크림으로 돌아와 재정착했다. 현재 크림반도 전체 주민 200만 명 가운데 러시아계(60%), 우크라이나계(24%)에 이어 세번째(13%)비중을 차지하는 소수민족 공동체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여전히 러시아에 강한 반감을 가진 상태다. 크림의 러시아 귀속에 타타르계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1946년 2차대전이 끝난 뒤 자치공화국 지위를 박탈당하고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 산하의 1개 주(州)로 들어간다.
그러다 1954년 크림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영토 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해 우크라이나 출신의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에 속했던 크림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에 양도한 것이다.
17세기 우크라이나 카자크 족이 러시아 제국에 복속을 요청한 페레야슬라프 조약 체결(1654년) 300주년을 기념한 친선의 표시였다.
소련이 붕괴의 길로 치닫던 1991년 2월 크림주는 전체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 자치소비에트공화국의 부활을 결정했고 소련 붕괴 후인 1992년 2월 크림 의회는 크림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해 5월엔 독립국 지위를 규정한 헌법까지 채택했으나 러시아의 중재하에 결국 우크라이나 내의 자치공화국으로 남게 됐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크림은 자체 헌법에 기초해 공화국 대통령까지 뽑는 대폭적인 자주권을 누렸으나 대통령직은 1995년 폐지됐다. 크림의 독립 움직임은 계속됐지만 1997년 체결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우호조약에서 크림의 우크라 영토 귀속이 공식적으로 확정되면서 한동안 수면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조약에서 크림은 자치공화국 지위를 부여받고 행정수반을 크림 의회에서 선출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인준을 받는 행정적 자율권을 누리게 됐다.
크림의 독립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우크라이나 내 친러-친서방 세력 간 정치 투쟁의 결과 친서방 진영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림 의회와 크림에 위치한 특별시인 세바스토폴은 결국 지난 11일 독립 선언서를 채택했고 16일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다. 이후 러시아가 일사천리로 크림 병합 절차를 추진하면서 크림은 결국 60년 만에 러시아로 되돌아왔다.
서방은 크림의 러시아 병합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국제 질서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흐루시초프의 변덕으로 왜곡됐던 역사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