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얀 베르메르(1632~1675)는 맑은 빛 표현과 세밀한 인물 묘사로 오랫동안 사랑 받고 있다. 특히 유리나 거울에 비친 인물이나 화가의 캔버스로 사람들을 보여주는 간접 표현과 파격적인 구도와, 무심한 듯 놓여있지만 뭔가 계산된 듯한 사물들 때문에 그의 그림은 표면적 아름다움에 이면적 신비로움을 간직한 수작들으로 평가된다.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인 티머시 브룩은 “베르메르는 자신이 살았던 17세기 중반 델프트(네덜란드의 항구도시)에 살고 있던 부르주아 가족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환영술사”라고 평하며 저서 ‘베르메르의 모자’를 통해 그림 안에 숨겨진 역사를 이야기 한다. 베르메르의 대표작 ‘장교와 웃는 소녀’를 보자. 장교가 실내에서도 자랑스럽게 쓰고 있는 모자는 당시 ‘최신 유행’이던 것으로 교역이 활발해진 캐나다 삼림지역에서 포획한 비버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장교의 구애를 받는 여인이 만지작거리는 엷은 빛깔의 유리잔은 베네치아 유리공의 기법이 담겨있다. 동시에 인물만큼이나 눈에 띄는 벽에 걸린 지도에는 당시 세계 무역을 장악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단이 그려져 있다. 또 다른 작품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은 멀리 있는 연인(혹은 남편)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몰입한 여인의 옆 모습과 창문에 비친 표정이 탁월하다. 여기 등장하는 과일이 담긴 접시는 중국에서 수입된 청백자기이고, 탁자를 감싼 화려한 터키 카펫은 당시 가장 유행하던 아이템이다. 책은 놓치기 쉬운 작품 속 사물들을 통해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화사를 꿰뚫고 있다. 베르메르가 그린 5점의 그림과 같은 시기에 델프트에 살았던 헨드리크 반 데르 부르흐의 그림, 그리고 델프트 산 접시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독자를 당시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