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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 벤처인의 씁쓸한 퇴장

대형게임사 자본유치 벤처 창업자

경영 어려워지자 내쫓기다시피 나와

제값 M&A·실패에 대한 관용 필요


얼마 전 미국의 뉴욕 인근에서 게임개발 업체를 운영하던 지인을 만났다. 그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몇 해 전 어린이용 온라인 게임업체를 창업, 직원 30~40명을 둘 정도로 성장시켰다. 3년 전 그는 사업확장을 위해 국내 유명 게임업체로부터 자본을 유치했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었다. 자본을 지원한 국내 게임업체가 회사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기 시작했고 새로 개발한 게임들은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자금을 지원한 국내 게임업체는 추가 출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로서는 이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회사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는 "히트상품을 내놓지 못한 나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면서도 "수년간 밤낮없이 일하며 키워온 업체에서 내쫓기다시피 나오게 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벤처 열기가 뜨겁다. 지난 1990년대 말 몰아쳤던 광풍 이후 벤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렇게 높은 적이 없었다. 지난 상반기에만 1조원 가까운 자금이 벤처업계로 들어갔고 코스닥에서도 바이오·헬스 등 성장산업 종목들의 주가는 올 들어 크게 올랐다. 또 한 번의 벤처 붐은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로 알려진 창조혁신센터도 전국 17곳에 설치 완료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금의 벤처 열기 역시 정권만 바뀌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눈치 빠른 기업인들만 각종 정부지원금을 빼먹고 끝날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1990년대 말의 벤처 붐은 큰 후유증을 남겼지만 당시에는 우리의 주력산업인 IT·조선·철강 등의 업종에서 대기업들이 고환율과 세계 경기의 호조에 수출을 크게 늘리면서 경제 성장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주력산업은 엔화약세를 등에 업은 일본에 밀리고 글로벌 경기마저 부진하면서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태다. 당장 주요 기업들의 부진한 2·4분기 실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을 일과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벤처기업의 육성은 새 성장엔진을 찾아야 하는 한국 경제의 필수 불가결한 과제다.

모처럼 살아난 벤처 붐이 실제 경제의 활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금을 지원하고 제도를 개선하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의 인프라 구축은 물론이며 이와 동반해 인식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앞서 사례로 언급했던 벤처인의 경우처럼 기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제값을 주는 데는 인색한 풍토가 문제다. 공정한 가격을 주고 벤처기업을 사고파는 인수합병(M&A)은 벤처의 토양이다. 인스타그램의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은 2012년 10억달러를 받고 회사를 페이스북에 넘긴 후에도 여전히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기업을 키우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영역을 개척한 벤처기업을 매각해 조성한 자금과 거기에 녹아 있는 경험은 또 다른 기업을 키우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실패에 대한 관용의 문화도 조성돼야 한다. KAIST 연구결과에 따르면 벤처기업인들이 느끼는 기업의 3년 생존율은 10% 수준이다. 10개 기업이 창업하면 9개는 망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실패가 경험이 돼 두 번째, 세 번째 도전에 나서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건설적인 실패' '지능적인 실패'는 관용되고 실패를 감안하지 않으면 진정한 혁신을 얻을 수 없다는 투자자들의 믿음이 오늘날 대표적인 벤처국가인 이스라엘의 밑거름이 됐다.

다수는 아니지만 여전히 벤처기업을 '로또'로 여기는 일부 기업인들의 자세도 변해야 할 것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은 지역 사회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할 뿐 아니라 사회적 단위로 권력을 행사하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있다"고 갈파했다. 드러커는 또 여러 차례 20세기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제는 벤처에서 기업가·모험가 정신이 꽃펴야 할 때다.

/이학인 증권부장 lee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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