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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한 어르신, 뒷방 늙은이는 옛말.'할배'들의 유쾌한 반란이 시작됐다.
지난 5일 첫 선을 보인 케이블채널 tvN의 새 예능'꽃보다 할배'가 방송 2회 만에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4%. 케이블 프로그램 성공 기준이 1.5%인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성적이다.
평균 나이 76세 할배들은 피 끓는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유럽 배낭여행에 몸을 실었다. 매사 적극적이어서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는'직진순재'이순재(78), 차분히 동행한 할배들을 다독이는'구야형'신구(77), 로맨티스트'젠틀근형'박근형(73), 짐이 무겁다며 거침없이 장조림을 가방에서 빼'하이킥'을 날린 막내'백심통'백일섭(69) 등 평소 예능에서 소비되지 않은 네 원로 배우들의 진솔한 모습은 가공 없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사했다. 훈계를 앞세운 가르침보다 수평적 위치에서 소통하며 건네는 뼈 있는 조언은 때때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신구는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당대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새롭게 해석되고 가치를 인정 받는 경우가 많다. 에펠탑도 건설 당시에는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지금 살아가고 앞으로를 내다보는 젊은이들도 지금 이 시대에는 설령 인정 받지 못할지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 한다면 훗날 더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도전과 경험의 중요성을 넌지시 일깨웠다. 삶의 겹겹을 쌓아 오늘에 이른 실버 세대들, 그들이 왜 보다 활발히 후(後) 세대와 호흡 하고 사회 전면에 나서야 하는지 그 존재 의의를 증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프로그램 제목 중'할배'라는 단어보다'꽃보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할아버지도 얼마나 귀여울 수 있는지 진솔하게 보여준 것이 프로그램이 사랑 받는 이유"라며"그 세대, 그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권위를 내려놓고 지금 세대의 이야기를 풀어낸 지점, 수직이 아닌 수평적 시선에서 세대와 호흡하고자 한 시도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고 풀이했다.
'노풍'(老風)은 안방극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상반기 가요계는'조용필 신드롬'으로 실버 세대의 약진을 오롯이 증명해 보였다. 63세'노장'의 끊임없는 음악적 혁신과 여전히 숨쉬는 젊은 감각은 실버 세대에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자신감을 안겨줬다.
광고계도 일찌감치'노풍'(老風)을 끌어안았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최고령 현역 MC 송해(89)를 CF에 기용했다. 서민적인 이미지와 신뢰감은 주효했고, 기업은행은 상당한 신규 예금 유치 효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배우 한진희(65)가 가세했다. 소위 잘나가는 톱스타, 젊은 감각에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 같은 통신사 광고에 메인 모델로 출연했다. 배우 한진희가"작작 좀 써.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만 보고, 데이터가 남아돌아?"라고 호통치는 장면은 단번엔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됐다. 광고업계는"그간 소비되지 않은 부분을 끌어내 상당한 반전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긍정적 이미지는 제품의 신뢰도와도 직결돼 실버 세대들의 모델 기용은 여러모로 차별화를 꾀하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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