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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져진 화약은 붉은색이다. 봉오리가 벌어지면 화약은 연분홍으로 탈색한다. 개화라 불리는 뇌관이 작렬하면 꽃들은 일제히 흰색으로 폭발한다. 지금 경상남도 진해는 벚꽃이 작렬하고 있다. 눈부신 흰 꽃은 밤이 되면 더욱 빛난다. 그래서 진해는 밤낮없이 흥청거린다. 나른한 봄볕과 벚꽃에 취한 군항은 앞으로 열흘간 무장을 해제한다.
기자를 태운 차가 여좌천 다리 위에 멈춰 섰다. TV드라마에 나오면서 하루아침에 홍보 포인트로 변신한 바로 그 다리다. 1.5㎞를 양옆으로 늘어선 벚나무들은 흐르는 하천을 흰 꽃으로 뒤덮는다.
진해에 식재된 벚나무는 모두 38만그루. 군항으로서 진해의 전략적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본 일제는 군대의 정원목으로 벚나무를 심었다. 일본의 국화(國花)는 엄연히 국화(菊花)임에도 '일본의 국화(國花)'로 오인된 벚나무들은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로 몰려 벌목의 수난을 당했다.
하지만 1960년대 식물학자 박만규씨가 "벚꽃의 원산지는 제주며 일본의 벚나무도 제주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벚꽃은 다시 심어지기 시작했다.
친일의 오명을 벗은 왕벚나무가 식재되기 시작한 곳은 공설운동장 주변. 이곳에 3만주가 식재된 후 시내 전체로 번져나간 벚꽃은 이제 38만주로 늘어 봄이면 흰색 꽃으로, 가을이면 붉은 활엽으로 진해를 뒤덮는다.
특히 지난 1926년 건설된 경화역은 2006년 폐쇄됐지만 철로를 따라 늘어선 800m 벚꽃굴의 장관은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50곳' 중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폐쇄된 철길이나 군항제 기간에는 하루 여덟 차례 관광기차가 운행된다.
특히 내수면 공원 안에 식재된 '춘추벚'은 봄가을 두 차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진해 중원로터리 등 진해구 일원에서 펼쳐지는 쉰세 번째 군항제는 오는 10일까지 열흘간 이어진다.
이 밖에 벚꽃 감상 포인트로는 제황산공원과 안민고개가 꼽힌다. 제황산공원은 공원 정상에 해군군함을 상징하는 9층 진해탑이 있다. 탑 내부 1·2층에는 진해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과 민속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진해시립박물관이 있으며 동편에는 동물원이 있어 가족 단위로 나들이하기 좋다.
산 정상에 탑이 있어 탑산공원이라고도 불리는데 365개 계단을 걸어 오르거나 모노레일로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모노레일은 하절기 오전9시~오후8시, 동절기 오전9시~오후6시, 군항제 기간에는 오전9시~오후10시 운행한다. 안민고개는 창원시 성산구에서 진해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야경이 아름다워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벚꽃이 피는 봄에는 밤하늘에 수놓아진 벚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진해군항제는 1953년 4월13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북원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한 것이 효시다. 지금도 해마다 군항제가 시작되면 복원로터리에서 헌다헌화(獻茶獻花), 승전행차 퍼레이드가 열리고 중원로터리에서 전야제·팔도풍물시장·예술문화공연 등 행사가 펼쳐진다.
올해 군항제는 해군창설 70주년과 충무공 탄신 470주년을 맞아 더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돼 있다.
중원로터리에서는 해군 창설 이후 장교와 사병들이 입었던 다양한 군복을 시대순으로 선보이는 '2015년 네이비 룩(NAVY LOOK) 페스티벌'도 열린다.
진해군항제의 백미인 '진해군악의장페스티벌'은 3~5일 진해공설운동장을 비롯한 진해 시내 곳곳에서 개최된다.
육해공 3군과 해병대 의장대,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 밴드부가 참여해 의장시범을 선보이며 5일 진해공설운동장 상공에서는 공군 특수비행전대인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도 실시될 예정이다.
벚꽃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밤 벚꽃과 빛이 어우러지는 별빛축제가 여좌천·제황산공원에서 열리며 진해루 멀티미디어 해상 불꽃쇼도 볼거리다. 마산역과 진해역을 오가는 벚꽃 셔틀열차도 운행된다.
이 밖에 올해 처음으로 3일부터 3일간 크루즈요트와 카약 체험도 해군사관학교 내 해양레포츠체험장에서 진행된다. 오전10시와 오후12시30분,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문의는 진해군항제 축제위원회 (055)225-3047~8.
/진해=우현석객원기자
사진제공=창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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