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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의 할리우드통신] 유머있고 사람 좋았던 故 어네스트 보그나인

기자가 지난 8일 95세로 별세한 악역 전문의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11월 그가 출연한 TV 영화 ‘크리스마스를 위한 할아버지’ 인터뷰 때였다.

기자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 뒤 “난 한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프랭크 시내트라를 때려죽인 당신을 미워했지만 이젠 용서했습니다”하자 그는 “그래 모두들 날 미워했지”라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거구의 보그나인은 영화에서 하와이 주둔 군부대의 험악한 영창장 팻초(뚱보)로 나와 자신에게 박박 대어드는 약골 시내트라를 때려죽여 시내트라 팬들로부터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었다.

다부진 체구에 황소 눈알 그리고 고릴라 같은 얼굴을 해 보그나인은 악역을 많이 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비롯해 ‘블랙 록의 흉일’‘자니 기타’‘북의 황제’ 등이 그런 영화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보그나인은 마음 좋고 장난기 있는 나이 먹은 아저씨 같았다. 그는 기자가 “미스터 보그나인”이라고 부르자 “콜 미 어니”(어네스트의 애칭)라고 당부했다. 기자는 보그나인에게 흘러간 할리우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물었는데 그는 자상히 답해 주었다.

사람이 매우 소박하고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데다 유머가 풍부해 처음 보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이웃집 아저씨 같아 정이 갔다.

보그나인의 이런 보통사람의 모습은 그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마티’(1955)에서 여실히 표현 됐다. 그는 뉴욕 브롱스에서 정육점을 경영하며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34세난 고독한 노총각으로 나와 민감하고 사실적인 연기를 했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연기다.



보그나인은 비록 악역을 많이 했지만 “난 꼭 필요하지 않으면 영화에서 욕을 절대로 안 했고 나체 역도 거절했다”면서 “실제 인물로 악마나 다름없는 알 카폰으로 나오면 50만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도 거절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보그나인은 “과거 우리들에겐 연기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진짜 의미였다”면서 “요즘 영화들을 보면 도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다. 섹스와 폭력과 컴퓨터 효과가 남발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섯 차례 결혼한 보그나인의 결혼 에피소드 중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것이 32일 만에 끝난 브로드웨이의 슈퍼스타 가수 에셀 머맨과의 혼사. 보그나인과 그의 네 번째 부인인 머맨은 신혼여행 차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방문했는데 팬들이 보그나인만 알아보고 머맨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 아내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2차 대전 때 해군으로 근무한 보그나인은 제대 후 어머니의 “넌 늘 남 앞에서 바보처럼 구니 연기나 해 보렴”이라는 권유에 따라 GI 빌로 연기를 공부했다. 생애 모두 115편이 넘는 영화에 나왔는데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피닉스의 비행’‘오스카’‘바이킹’‘더티 더즌’‘와일드 번치’ 등이 있다. 그는 인기 TV 시리즈 ‘맥헤일의 해군’과 ‘에어울프’ 등에도 주연, TV 배우로서도 맹활약을 했다.

5년 전 인터뷰 때 보그나인은 자신의 건강비결을 “잘 자고 물 많이 마시고 독서를 하면서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귀띔해 준 뒤 “내가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행복을 줬다면 난 행복하다”며 겸손해 했다.

인터뷰 후 보그나인에게 “부디 100세 넘도록 사세요”라고 작별인사를 했더니 그는 “댕큐”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100년에 5년을 채 다 못 채우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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