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서점편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들춰(?) 보지도 않은지가 꽤 오래 됐다. 현저히 줄어든 독서량 때문인지 사고의 범위가 한정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지도 오래 됐다. 종이책이 무겁다는 이유를 들어 호기롭게 전자책을 구매하기는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개인적으로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독서가 몰입하기 힘들다는 경험을 한 후로, ‘서점에 가리라’는 나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한 건 나름 의미 있는 일인 셈이다. 딱히 목표로 했던 책이 없었기에 서점을 한 바퀴 둘러봤다. 끌리는 책이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곳곳을 기웃거렸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발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잠깐이라도 서점에 들를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뭔지는 꼭 확인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 책이니만큼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란 바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도 발이 멈췄다. 책들을 쭉 훑어보니 ‘다들 사회생활이 녹록지 않구나’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베스트셀러 모두 하나같이 읽는 이를 위로해주거나 용기를 북돋워 주는 내용이니까.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집어든 책,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집어든 책이 그러하니 우리 모두 용기를 짜내길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면 도전의식이 부족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신문지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들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안정된 직장을 과감하게 버리고 또 다시 불확실성으로 자기를 내던진 CEO의 용기, 몇십 년의 무명생활을 견디고 마침내 스타가 된 이의 노력 등 결과적으론 비범한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 일색이다. 마치 내가 해낸 것 같은 일종의 뿌듯함마저 드는 이야기만 접하다 보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은 매우 하찮게 느껴지기 쉽다. ‘아, 더 힘든 상황도 견디고 우뚝 선 사람도 있는데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을 먹는다면 미담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것이지만, 반대로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미담의 역기능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상은 더 강해지라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고 우리를 꾸짖는다. 넘어진 사람이 계속 넘어진 채로 있다면 그는 사회적 기준으로 루저(loser)일 뿐이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문구처럼 오직 승자만을 갈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단 한 사람의 승리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아등바등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끝없이 갈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남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만의 잣대가 필요하다. 내 삶의 기쁨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될 수는 없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창업에 뛰어들 수도 없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급진적인 변화만이 변화의 정석은 아니다.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정도가 아니라면 삶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삶의 전략적 타협점을 만들 용기다. 무모한 용기는 용기의 탈을 쓴 탈출 욕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냥 도망가고 싶은 건 아닌지 자문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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