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카드뉴스]오늘의 경제소사-9월16일 검은수요일















1992년 9월 16일 영국 외환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영국 파운드화가 20% 폭락하면서 영국 통화 당국이 유럽환율메커니즘(ERM)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른바 ‘검은 수요일’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유럽환율메커니즘(ERM)이란 일종의 고정환율제도로 유럽 내 단일통화권 구축을 위한 과도기적 조치를 말한다. 지금의 유로화 단일 통화권 구축을 위한 사전 포석 장치였던 셈이다.

영국은 1990년 10월 8일 유럽통화제도(EMS) 중심기구인 환율조절메커니즘(ERM)에 가입했다. 영국 파운드화는 당시 협약에 따라 파운드당 독일 2.95마르크화를 기준으로 상하 6%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통화 당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정할 수 있었다.

위기는 독일에서 시작됐다. 1990년 10월 3일 통일한 독일은 낙후된 동독 경제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독일은 휴지조각이 된 동독의 화폐와 서독의 화폐를 1:1 가치로 교환하기로 결정했고 동독 지역에 대대적인 재정지출을 집행했다. 하지만 동독에 풀려나간 마르크화는 독일 경제에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2년동안 10차례의 금리 인상 조치를 단행했다.

독일의 금리인상 조치는 독일과 환율이 연동된 주변국들엔 악재로 작용했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독일로 자금들이 빠져나간 것이다. 빠져나가는 외환을 지켜만 볼 수 없던 주변국들도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금리를 올리자 실업률이 고공행진하고 경기가 둔화하는 등 불황이 이어졌다. 이를 버티다 못한 핀란드는 1992년 9월 8일 마르크화의 환율연동제를 포기했다. 반면, 유럽 내 독일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던 영국은 파운드화 방어에 적극 나섰다. 당시 ERM 가입을 주도했던 영국의 메이저 총리는 “영란은행의 외환보유고는 넉넉하며 환율 방어에는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다.



펀드매니저였던 조지소로스(George Soros)는 이런 유럽 내 외환시장의 불협화음을 파고 들었다. 소로스는 직접 언론에 나서며 파운드화 투매 분위기를 조성했고 영국 외환시장을 초토화시킬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9월 15일, 그는 모든 자금을 동원해 100억달러어치의 파운드화를 영국 외환시장에 내던졌다. 소로스가 나서자 다른 헤지펀드들도 1,100억달러 어치의 파운드화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에 영국 통화당국은 기준금리를 10%에서 15%로 대폭 인상하며 통화가치 안정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어진 투기자본의 대공세는 끝내 막지 못했다. 소로스는 2주동안 10억달러를 벌어들였고 역사상 최단시간에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펀드매니저로 기록됐다.

이튿날인 9월 16일, 영국은 환율조정메커니즘(ERM) 탈퇴를 선언했다.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영국 재무부와 영란은행은 이후 변동환율제를 도입했고 고금리 정책도 포기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를 두고 “영국 경제가 1980년대 경제호황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재무부의 중요한 실수”라고 질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