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디플레이션 탈출 목표를 뒷받침해온 일본 금융시장이 극도의 불안 양상을 보이면서 아베노믹스도 좌초 위기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제조업 등 실물경기에 본격적으로 파급되기도 전에 그동안 공격적 돈풀기에 힘입어 나홀로 승승장구하던 증시가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국채금리가 23일 장중 한때 1%대를 돌파하자 투자가들이 일본 국채를 던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일단 이날 일본 도쿄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지수가 전날 대비 7.32%나 대폭락한 것은 일본의 양대 무역 파트너인 미국과 중국에서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진 탓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은 22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23일 나온 중국의 HSBC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 5월 예비치도 49.6으로 7개월 만에 경기확장 기준선인 50을 밑돌았다. 이에 무역이나 중국과 연관된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이날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가 장중 1%대를 돌파하며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에서 금리가 오를 조짐을 보이자 일본 국채 투자가들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국채를 내던진 것이다.
그동안 금융시장 호조는 일본 정부 당국자들이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실물경제로 쉽게 전이되지 않고 있음에도 전체 경제여건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실제 지난 22일 일본의 4월 무역수지가 4월 기준으로는 사상최악을 기록했음에도 이날 일본은행(BOJ)은 일본의 경기판단을 전달의 '하락세를 멈추고 회복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에서 '회복되고 있다'고 상향했다. 이는 5개월 연속 상향이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빛을 보기도 전에 믿었던 금융경제마저 흔들리면서 아베노믹스는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됐다. 이번 주가폭락으로 그동안 과열됐던 일본증시가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들어갈 경우 일본 정부가 고대하는 실물경제 부활은 더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동치는 국채시장이 아베노믹스의 뇌관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240%에 육박해 금리가 오르면 정부가 이자로 지급할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국채시장은 일본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본 정부는 일주일여 만에 또다시 국채시장에 개입했다. 이날 BOJ와 재무성은 시중에 2조8,000억엔을 풀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BOJ와 재무성이 같은 날 시장조작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일본 정부가 인식하는 위기의 정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일본은 15일 시중에 2조8,000억엔을 공급한 뒤 불과 일주일 새 총 5조6,000억엔을 풀었다.
하지만 이 같은 당국의 시장개입에도 향후 국채금리는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일본 국채시장의 동향을 알려주는 10년물 국채선물 가격은 23일 장중 140.90엔(2011년 7월 이래 최저)까지 떨어져 시장에 서킷브레이커(일시 거래중단)가 발동됐다. 또한 지난달 일본 대형은행들이 중장기 국채를 13개월 만의 최대 규모인 2조5,000억엔어치나 파는 등 그동안 큰 동요 없이 국채를 보유해온 일본인들도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급격히 흔들리면서 결국 좌초돼 글로벌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글로벌증시와 정크본드가 활황세를 보이는 데는 일본에서 풀린 엄청난 돈의 영향이 컸는데 이 돈이 끊기면 거품이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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