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적이다, 막말을 한다, 진술이나 증언을 도중에 가로막는다
매년 법원 국정감사 시즌이면 나오는 단골 자료다. 법정 모니터링을 실시했더니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이나 고압적인 태도가 몇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주 내용이다.
한동안 '늙으면 죽어야지', '여자가 말이 많으면 안된다' 등 현직 판사들의 막말이 논란을 만들고 대기업·정치인 판결을 둘러싼 양형의 정당성이 도마에 오르며 '판사=자본과 권력을 위해 일하는 엘리트 집단'이란 선입견도 생겨났다. 과연 판사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불멸의 신성가족'인 것일까.
현직 법원 부장판사인 저자는 판사들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낄법한 독자들에게 인간적인 판사들의 고뇌와 경험을 풀어낸다. 저자가 지난 10여년간 법관 게시판 등을 통해 써온 글들을 엮은 이 책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재판을 통해 법과 사람, 정의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저자의 자기 고백도 눈길을 끈다. 30대 의욕이 한창 앞서던 단독판사 시절, 그는 법정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피고인에게 막말을 했다. "피고인, 교도소 콩밥도 국민 혈세로 마련하는 겁니다. 피고인에게는 콩밥도 아깝습니다."
피고석에 섰던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 친구나 친척을 내세워 비싼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는 "친구가 오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이 안나타났으니 외상 좀 하자"는 식으로 무전취식을 하다 법원까지 온, 전과가 20회가 넘는 사람이었다. 출소 후 얼마 안가 또 얼굴 없는 친구를 운운하는 수법으로 범죄를 저지르다 다시 감옥에 들어가길 반복한 것이다. 법정에서도 거짓으로 일관하는 피고인에게 저자는 "콩밥이 아깝다"며 화를 냈다. "판사님, 콩밥도 아깝다뇨? 저는 이 나라 국민도 아닙니까? 사람도 아닙니까?" 피고가 던진 한마디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30대 초반의 젊은이인 내가 나보다 20년은 더 살아온 사람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내뱉었구나. 내게 그럴 권리가 있단 말인가." 고민 끝에 저자는 다음 기일 날 피고인에게 말했다. "피고인,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번 재판에서 제가 했던 말은 해서는 안 될 잘못된 말이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재판 결과 역시나 피고인이 주장하던 친구와 친척은 찾을 수가 없었고, 그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출소 후, 그 남성은 교회 이발사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책은 집단 폭행 후 자포자기한 삶을 살고 있던 소녀 절도범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다'라는 구호를 복창시키는 판사, 공업용 본드를 흡입하는 청소년들 때문에 특정 업체에 찾아가 공업용 본드를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고 영업을 항해한 판사 등 죄와 죄인 이전에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판사들의 일화도 소개한다.
단순히 '이런 착하고 좋은 판사들도 많다'는 사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민감한 이슈인 '양형'에 대해서도 "선례와 기준으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조심스레 본인의 생각을 전한다.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양형의 재량에 대해 최대한 편차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재량을 두려워 해 선례와 기준으로 숨어들어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사법불신에 대해 억울해만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저자가 10년 넘게 써온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을 엮어 낸 이 책이 그 많은 노력들 중 의미있는 한 걸음이 되지 않을까./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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