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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1월 3일] 금융위기, 이번엔 다르다고?

주식시장에서 학습효과는 없는 것 같다. 주가 사이클을 한두번 겪었으면 배우는 것이 있을법한데 도무지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다(It’s different this time)”고 주장한다. 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외환위기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때는 아시아 각국의 대외지급능력에 문제가 생긴 사건이어서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비교적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째,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번졌고 둘째, 금융에서 시작해 실물경제로 파급되고 있는 그야말로 바닥을 모르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주장이 시장을 압도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있다’는 이 평범한 사실은 지난번 위기와 결코 다르지 않다. 지나고 보면 단지 좀더 깊은 골짜기로 판명될 것이다. 세계적인 문제이기에 온 나라 정부들이 서로 협력해 어떡하든지 해결해보려고 나섰지 않은가. 주식형펀드의 수탁액이 지난 10월28일까지 닷새 연속 감소했다. 최근의 폭락장에서 겁에 질려 매도한 투자자들의 행태는 이번에도 ‘과거와 다르지 않음’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이들이 누구이던가. 지난해 내내 월 수조원씩, 그리고 주가가 천장에 닿았던 11월 한달 동안 무려 6조원어치나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던 바로 그들이다(물론 개별적으로는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때의 판단이 틀렸듯이 지금도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세상을 거꾸로 보는 사람에게는 역설이라면 역설이다. 최근의 주가폭락을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도망가는 전문가들의 행태 역시 지난번 위기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 지나친가. 저녁 먹고 열살짜리 아이와 함께 부산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간다고 치자. 대구를 지나 밀양, 아니 구포를 통과하면 목적지에 다 왔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성미 급한 사람이라면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일지 모른다. 밖이 아무리 깜깜해도 “아직 멀었느냐”는 아이의 물음에 적어도 아버지라면 “글쎄, 대구를 지난 것이 반시간 전이니 이제 곧 부산에 도착할 거야”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주식이나 펀드를 살 때 수수료를 내는 이유라는 생각이다. 지금이라도 팔아 치워야 하는지 아니면 불끈 쥐고 있어야 하는지 지적(知的) 위로가 갈급한데 그런 류의 편지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제러미 시걸 교수가 미국의 주가추이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1932년 대공황 때 지수가 장기 추세선을 42%, 1973~74년 1차 오일쇼크 때는 41%를 각각 밑돌았던 적이 있었다. 최근의 주가하락으로 이 추세선을 38% 밑돌고 있다니 분명 극단에 도달한 느낌이다. 우리는 어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다음해 6월 코스피지수가 227에 다다를 때까지 12개월 동안 전고점 대비 65% 하락했다. 또 2000년 IT거품이 꺼진 후 10개월 동안 49%나 추락했고 2003년 카드대란 때 11개월 동안은 45% 하락했지만 기억할 것은 그때마다 주가는 어김없이 회복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12개월 동안 279%, 닷컴 거품 때 5개월 동안 103%, 그리고 카드대란 이후 13개월 동안 83% 회복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정점 이후 12개월 동안 56% 하락한 최근의 주가는 아직 대전인가 아니면 밀양 또는 구포에 해당하는가. 증권선물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8배까지 치솟았던 주가이익비율(PER)이 올 9월 11배까지 떨어졌고 최근의 지수 900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7배에 불과하다. 과거를 아무리 멀리 되돌아봐도 흔치 않은 수준이다. 주가는 기업가치를 반영한다는 사실 또한 이번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경기가 동반 침체한다고 해도 포스코ㆍ현대차ㆍLG전자 같은 우리의 대표기업들이 일시적인 매출부진 또는 이익감소를 겪은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모습으로 세계를 누비지 않겠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과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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