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만에 펴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가 일본 패션잡지 '앙앙'에 연재했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50여 편이 단행본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로 묶여 나왔다.
"하루키가 아니었으면 누가 채소의 기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이번 에세이는 아무도 글로 담지 않았던 야릇한 기분이나 공기의 감촉을 다르게 느끼게 만드는 미묘한 분위기를 잘 짚어낸다. 작가 특유의 고감도 더듬이로 분명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포착한 일상의 조각들이 신선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기로 유명한 작가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편안한 평상복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가끔은 아줌마처럼 수다스러워지는 하루키를 만날 수 있다.
물이 반쯤 든 컵을 보고 '반이나 남았네'와 '반밖에 안 남았네'로 낙관과 비관의 태도를 나누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작가는 '이번 총리의 뇌는 반밖에 차지 않았네'와 '이번 총리의 뇌는 반이나 차 있네'라고 말하며 낙관과 비관으로 나누기보다 신선한 발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동물원에 갔을 때 한파로 사람이 별로 없어 사자와 눈앞에서 마주한 하루키는 시험 삼아 살짝 웃어본다. 사자는 역시나 웃어주지 않는다. 하루키는 "혹한 속에서 종일 눈싸움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자리를 떠났다고 적었다. 하루키 특유의 유머러스한 냉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에둘러 표현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것, 좋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다. 독자 역시 '이런 건 진짜 싫다, 짜증난다' 하는 문장보다 '이런 글 진짜 좋다, 쓰다 보면 즐거워진다'하는 문장 쪽이 읽고 나서 즐겁지 않은가."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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