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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도 스펙'이라니… 취업난에 고달픈 청춘 알바전쟁에 또한번 울다

"현장 경험하고 스펙도 쌓자" 취업준비생도 가세

외식업계·화장품 매장 등 경쟁률 갈수록 치솟아

정직원 채용 기회 주는 자리엔 고스펙 지원자 몰려

"고급 노동력이 제대로 된 일자리 못찾는 현실 씁쓸"


서울의 한 사립대 중국어과에 재학 중인 김영주(25·가명)씨는 현재 졸업을 잠정 미루고 '대학교 5학년'을 다니고 있다. 졸업한 상태로 구직활동을 할 경우 불리하기 때문에 졸업을 유예한 것이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 HSK(중국어능력평가) 6급, 컴퓨터활용능력 1급 등 소위 취업에 필요하다는 각종 '스펙'을 갖추고 있지만 구직 시장은 훨씬 냉혹했다.

차선책으로 김씨는 졸업 유예 기간 동안 용돈도 벌고 하고 싶은 일과 유관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로 눈을 돌렸다. 평소 패션·뷰티 기업에 취업을 희망했던 김씨는 전략적으로 직무 연관성이 있는 화장품 매장에서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김씨는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직무와 연관된 경험을 풀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관련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씨는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 탓에 또 한 번 눈물을 삼켰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판매직 자리를 좀처럼 구하기 어려웠던 것. 가까스로 대학가 인근 중저가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게 됐지만 아르바이트를 얻기까지의 과정만 돌아보면 아찔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적잖은 화장품 매장에서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이 있는 이들을 우대해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나와 같은 스펙의 구직자들이 넘쳐 흘렀다"며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고스펙'을 갖춘 취업준비생들까지 아르바이트 시장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구직이 하늘의 별 따기와 다름없는 요즘 알바 구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알바도 스펙 시대'가 열리면서 구직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아픔이 더욱 커지고 있다. 고스펙을 갖췄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취업준비생 상당수에는 아르바이트가 구직 기간 동안 최소한의 경제적 소득을 취할 수 있는 방편이다. 더욱이 각 기업들이 '탈스펙'을 내세우며 직무 연관 활동 경험을 채용 과정에서 더욱 중요하게 여겨 취준생들은 토익, 해외 어학연수, 기업 인턴십 경험, 각종 마케팅 공모전 수상 실적, 봉사활동,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학점 등 외적 조건 외에 다양한 외부 활동 경험을 쌓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스펙을 초월한 열린 채용을 지향하고 있지만 사실상 구직을 원하는 청년들에게는 아르바이트가 또 다른 스펙 쌓기로 자리 잡게 된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구직 활동에 나선 최미연(26·가명)씨는 "최근 단순한 스펙을 넘어 직무 중심의 활동 경험을 중시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자기소개서에 쓸 '스토리'를 쌓기 위해 외식업계 혹은 화장품 매장 아르바이트 자리를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최씨는 특히 "기업 정직원 채용과 연계되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해마다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의 말처럼 채용과 연계된 아르바이트 자리는 예비 인재로 북적인다. 롯데리아와 엔제리너스의 경우 2013년 7월부터 '스태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장에서 최소 6개월 이상 근무한 아르바이트생 중 근무 태도 등이 좋은 이들을 선별, 매장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해주는 제도다. 평균 4개월가량 교육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지난해만 스태프 지원 경쟁률이 7.5대1에 달할 정도로 치열하다.



CJ그룹 역시 2013년부터 '뉴 파트타임 잡' 제도를 만들어 능력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정규직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CJ푸드빌·올리브영·CGV 등 3개 계열사 아르바이트생들이 대상이다. 각 지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입사한 뒤 3개월이 지나면 점장 주관의 행동평가와 면접을 거쳐 전문인턴으로 승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3개월간의 전문인턴을 거친 뒤 평가를 통과하면 정규직 점장이 될 수 있다. 일정 기간 근무한 후 본사 이동도 가능하다. 올리브영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정규직 직원 중 약 28%가 뉴 파트타임 잡 제도를 통해 입사했다"며 "취업하려는 분야와 관계 있는 유사직무 아르바이트로 한 우물을 파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라고 말했다.

기업 취직이 더욱 어려워진 만큼 애초부터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를 재능과 특기를 연마하는 창구로 활용, 차후 카페 창업 등을 염두에 두고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박수빈(27·가명)씨는 대학 재학 때부터 각종 카페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박씨는 "스펙을 모두 갖춰도 취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마냥 기업 공채 같은 굵직한 채용에만 목 매는 게 시간 낭비 같았다"며 "일찍이 청년 창업을 생각하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무 경험을 미리 쌓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진영(26·가명)씨는 줄곧 커피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유명 커피전문점 정직원으로 입사한 경우다. 영어·중국어에 능통한 이씨는 2년여간 구직 활동을 했지만 모두 결과가 좋지 못했다. 좌절했지만 평소 관심이 많았던 커피로 재기를 노렸다. 1년간 종로에 위치한 한 커피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회사 밀집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 바이어도 종종 매장을 찾는 경우가 있어 이씨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 데 큰 장점이 됐다. 이씨는 "솔직히 아르바이트 구하는데 영어에 제2외국어 능력까지 필요한 건가"라고 의문이 들었다면서 "아르바이트 비용이 현재 내 능력과 쏟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합당한 수준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취업을 위한 마지막 끈이라는 마음으로 커피 매장 운영 방식을 곁눈으로 익히고 열심히 일해 정직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고스펙을 갖춘 아르바이트생들이 넘쳐나면서 고용주들은 옥석 가리기에 더욱 골몰하게 됐다고 토로한다. 한 대형 외식브랜드 인사 담당 팀장은 "그룹 공채에서 낙방한 이들 중 일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장 경험을 쌓고 인턴, 정규직을 거쳐 우회로 입사하는 채용 전형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해 아르바이트 자리도 고스펙 지원자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매번 채용을 앞두고 서류를 훑다 보면 젊은 고급 노동력이 노동시장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하고 국가적 낭비가 심해지고 있는 현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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