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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승한 지 2년 넘게 지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서울경제 여자오픈의 '6대 여왕' 이정민(20ㆍKTㆍ고려대). 꿀맛 같은 우승 다음날인 5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는 그는 896일 만의 우승이라는 말에 남의 일인 것처럼 놀라워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3년 차 이정민은 4일 부산 아시아드CC에서 끝난 제6회 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3라운드 합계 6언더파 210타로 우승했다. 올 시즌 여자 대회 코스 그린 중 가장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첫날 이븐파를 지켰고 2ㆍ3라운드에서 각각 5언더파와 1언더파를 적어냈다. 최대 무기인 컴퓨터 아이언 샷이 퍼트에 유리한 위치로만 딱딱 떨어졌다. 2010년 5월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 이은 프로 통산 2승. 스트로크 플레이 대회로는 첫 승이었다.
두 번째 트로피를 들기까지 2년5개월여를 기다려야 했지만 이정민은 슬럼프라는 말을 거부했다. "2010년 하반기 첫 대회 프로암 때부터 왼쪽 어깨가 아파왔고 참고 치면서 무리가 왔다"는 이정민은 "성적이 안 나오니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도망가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데뷔 첫 해인 2010년 5개 대회 만에 덜컥 우승을 하면서 '괴물 신인'으로 떠오른 뒤 이번 서경 오픈 전까지 컷오프 12차례, 기권 4차례로 지독한 후유증을 겪었다. 당시 이정민이 포기 대신 부활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일찍 챙겨놓은 우승의 공이 컸다. "우승을 해놓았기 때문에 시드(각 대회 우승자는 3년간 전경기 출전권 획득)가 있어서 걱정이 덜 됐어요. 컷오프되고 기권하는 동안 운전면허도 따고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면서 보냈죠."
이정민은 서울 봉은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 5개월 만에 80타를 찍고 대원외고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워낙 어릴 때부터 주목 받다 보니 몇 가지 오해도 생겨났다. 첫째, '이정민은 아마추어 때부터 300야드를 밥 먹듯 날렸다'. 이에 대해 이정민은 "완전히 내리막인 홀에서 한두 차례 기록했을 뿐인데 너무 부풀려졌다"며 쑥스러워했다. 올 시즌 평균 드라이버 샷 거리는 252.93야드(13위). 둘째, '이정민은 근성 없이 골프를 하는 것 같다'. 너무 간결하고 부드러워 신중을 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스윙과 건들거리는 듯한 걸음걸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또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와 그에 따른 넉넉한 가정환경도 한몫했다. 이정민은 "다른 것은 몰라도 골프에 있어서는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일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한다. 걸음걸이도 워낙 지적을 많이 받아 신경 쓰면서 걷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세번째 오해는 '이정민은 골프만큼 피부관리에 신경 쓸 것 같다'는 것. 이른바 '꿀피부'로 유명하다 보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정민은 화장품도 잘 안 쓰고 관리는 받아본 적도 없다. 대신 시간 날 때마다 동갑내기 '절친'인 정연주(20ㆍCJ오쇼핑)와 영화관을 찾아 스트레스를 씻어낸다.
아이언 샷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자 "쇼트 아이언은 대부분 잘 다루지만 긴 아이언은 뭔가 다르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니까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똑같은 스윙을 해도 클럽의 길이에 따라 저절로 조정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정민도 미국 무대 진출을 꿈꾸고 있다. 약점인 드라이버 샷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이번 겨울 강도 높은 훈련으로 승부수를 던질 예정. "대회를 치르고 나면 잘했든 못했든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이뤄놓은 것을 비우고 이뤄야 할 것을 머리에 담아야죠. 얼른 또 연습장 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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